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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한담] 영혼을 위한 재봉틀 / 한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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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짓는 재봉틀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옷으로 몸을 감추듯, 영혼도 재봉틀로 만든 고운 매무새로 가려 어른이 되면서 흐려진 마음을 숨기고 싶다. ‘로사리오’는 이런 부끄러운 삶의 어여쁜 액세서리가 된다. 성모님께 바치는 장미꽃다발이 깃든 묵주를 뜻하는데, 그 어떤 팔찌보다 맵시롭다. 팔찌는 손목 위에 놓인다. 영혼의 맥을 짚으며 묵주가 속내에 스민 번뇌의 농도를 가늠해 주는 느낌을 받는다. 알알이 손목을 감싸며 우리를 정화 시켜 주는 듯하다. 단아한 묵주 알을 헤아리면 그 회전력으로 나만의 투명한 고백이 저 높은 곳에 닿을 것 같다. 묵주기도에 담긴 환희, 고통, 영광, 빛의 신비를 깨닫기엔 아직 모자라지만, 조용한 평온으로 이끌어주는 자그마한 구슬의 큰 힘이 놀랍다.

가만 보면 진짜 멋쟁이들은 묵주처럼 무척 사소한 장식만으로 그친다. 모든 치장을 화려하게 실컷 해보고 나면, 오히려 가장 단순한 것이 가장 멋있음을 알게 된다. 휘황한 옷들을 만들어 내는 디자이너들이 그들 스스로는 희거나 검게 무채색을 즐겨 입는 것도 이런 연유다.

멋의 규칙을 가톨릭으로 이어서 말한다면, 세례성사로 깨끗해진 순결함을 나타내는 미사보가 있다. 이 거룩한 수건은 말갛게 하얗다. 미사보가 새하얀 까닭도 어쩌면 앞서 얘기한 멋쟁이들과 비슷한 맥락이라는 재미난 짐작을 해 본다. 생애의 탐닉을 내려놓은 기도는 그 무엇보다 멋스러운 순간이다. 머리카락이라는 세속의 사치를 흰 미사보로 가리는 의식은 정숙하면서 겸손한 자태이다. 아름다움에는 욕심이 없기에 컬러가 없다. 미사보를 쓰듯, 그렇게 다소곳이 머리 위에 축복을 이고 산다.


한분순(클라라) 시인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7-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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