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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주의 창]상식과 이성의 합리성, 그리고 합의의 기술 / 송용민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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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사회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는 사회 구성원들이 ‘공통 감각’을 갖추고, 서로 대화하는 소통과 친교의 기술이다. 여기서 말하는 공통 감각이란 흔히 말하는 ‘상식’을 뜻한다.

요즘 세상에 상식 밖의 일들이 많아졌다. 부모가 혼자 살겠다고 자식을 버리고, 자식이 도움이 안 된다고 부모를 죽이고, 우정을 빌미로 친구를 유혹해 사기를 치고, 변심한 애인을 협박하고 죽이기까지 한다. 뻔한 일을 없던 일로 만들고, 자신과 생각과 이념이 다르다고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은밀하게 사회에서 밀어내고, 돈으로 사람을 매수해 원하는 결과를 얻으려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물론 이런 일들이 과거에도 없던 것은 아니다. 단지 미디어의 발전으로 소셜네트워크(SNS)를 통해 더 쉽고, 빠르게, 때로는 조작된 거짓 뉴스를 통해 개인의 손바닥 위에 놓인 스마트폰을 통해 쉽게 전달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중요한 점은 이런 상식을 결정하는 사회적 기준이, 합리적 이성이 아닌 검증되지 않은 다수의 여론이나 조작된 통계와 뉴스, ‘~하더라’식의 찌라시 같은 담론들, 특정한 이념이나 가치관에 사로잡혀 남과 대화하기를 거부하거나, 무조건 상대를 비난하기만 하는 비이성적인 태도가 될 때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가 된다.

독일의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는 상식이 통하고, 억압된 진실로부터 해방된 사회는 사회 구성원들의 자유로운 토론과 이성적 대화가 가능한 공동체라는 점을 강조한 바 있다. 그가 말하는 올바른 대화란 “서로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있고, 그 내용이 참이어야 하며 상대방이 성실히 지킬 것을 믿을 수 있고, 말하는 사람들의 관계가 평등하고 수평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이루어진 대화와 토론에서만 ‘합리적’이라는 이성의 도구를 통하여 최선의 합의를 이룰 수 있고, 그렇지 못한 대화는 결국 폭력을 낳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우리 사회는 올바른 상식과 이성적 성찰을 통해 숨겨진 권력의 적폐와 모순을 밝혀냈고, 철저하게 위장되고 은폐된 진실을 알게 되면서 함께 ‘의로운 분노’를 평화롭게 드러내는 법을 배웠다. 오랫동안 길들여진 권력의 거짓에 맞서 참된 자유와 정의, 평화가 무엇인지 느낀 것이다. 하버마스가 말한 상식과 합리적인 대화를 통해 서로 다른 의견과 가치관을 끊임없는 대화와 토론을 통하여 합의해 나가는 첫 단추를 풀어낸 셈이다.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1인당 GDP(국내총생산) 27를 갈등비용으로 지출한다고 한다. 이는 모든 국민이 사회갈등으로 매년 900만 원씩 꼬박꼬박 손해 보는 셈이라고 한다. 갈등 없는 사회가 없지만, 갈등을 해결해내는 사회는 필요하다. 몇몇 선진국이 오랜 사회적 갈등을 풀고 합의를 이룬 예들은 하루아침에 얻은 것이 아니다. 사회 구성원들의 상식적인 시민 의식이 성장하고, 상대방과 열린 마음으로 대화하며, 결론을 미리 정해두지 않고 보편적인 진리를 찾아가는 여정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물론 이런 노력은 거시적인 사회 조직이 아니라, 개인적인 삶의 영역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가족들 간에 친밀감을 회복하고, 부모와 자식 간에, 부부 상호 간에 서로의 입장을 들어주는 경청의 자세로부터, 이웃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배려하며 아픔을 나누고 돕는 일에서부터,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동료들의 입장에 서서 인내하고 존중하며 설득하는 기술을 배우면서, 집단의 이익을 앞세우기보다는 더불어 행복해지는 공존과 상생의 길을 찾기 위해 공감하는 능력과 대화하는 법을 배우는 작은 실천에서부터 우리 사회는 이상적인 공동체로 나아갈 수 있다.

교회도 사회의 한 조직으로 예외가 될 수 없다. 오히려 영원한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는 신앙인들에게 이런 사회적 노력은 더 품위 있고, 생명력 있게 실천되어야 한다. 만일 우리 교회에 열린 대화와 소통, 친교와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우리 교회 안에도 적폐가 쌓였다는 신호가 될 수 있고, 그것은 지난 500년 전 마르틴 루터가 종교 개혁을 통해 외친 쇄신의 목소리로 바뀔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송용민 신부 (주교회의 사무국장·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7-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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