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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단상] 내 삶의 궤적, 주님의 계획대로

라경숙(안젤라, 플레이어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단장, 플루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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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 주신 귀한 탈렌트 덕분에 중학생 때 플루트를 전공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는 매주 미사 때마다 영성체 후 묵상 곡을 연주하게 되었다. 이는 나의 믿음이 자연스럽게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제는 연주하지 않거나 지휘를 하지 않는 미사를 드리게 되면 허전할 정도가 되었다.

신앙이 성장해감에 따라 신부님의 강론도 더 열심히 듣게 되었다. 그러던 가운데 신부님 강론 중에 한 말씀이 뇌리에 박혀 어린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나는 결심했다.

‘나는 성당에서 결혼식을 할 것이다. 그리고 주례 신부님은 꼭 이 신부님께 부탁할 것이다. ’

예술 고등학교에 진학한 나는 연습과 공부, 두 가지를 모두 해내야 하는 수월치 않은 상황이었다. 갈수록 미사 참여가 힘들어졌다. 그러나 반갑게도 고등학교 입학 후 개인지도를 받게 된 선생님께서 포콜라레 운동을 하시는 신심이 깊으신 가톨릭 신자셨다. 늘 기도하시는 선생님과 공부하는 시간 속에 주님께서 함께하셨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 대입을 준비하는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다. 부모님께서 실기시험을 앞두고 불안해하는 나를 위해 신부님을 뵙고 안정을 찾을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주셨다. 오랜만에 내 마음속 주례 신부님을 뵐 수 있었다. 신부님의 배려로 부모님과 나는 사제관에서 함께 식사를 나누었다. 신부님께서 내게 안수하고 기도해주셨다.

“주님께서 함께하셔서 그동안 쌓아놓은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게 해주시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곳에 안젤라를 보내주십시오.”

그때 나는 많은 눈물을 흘렸다. 그날 흘렸던 눈물로 성령님이 나와 함께 하셨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신부님의 기도와 주님의 은총으로 무사히 대학에 진학했다. 그 후 이어진 프랑스 파리에서의 유학 생활은 외롭고 힘들었다. 그러나 어려운 공부를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신 주님께 감사를 드린다. “주님께서는 내 곁에 계시면서 나를 굳세게 해주셨습니다.”(2티모 4,17)

프랑스 유학을 무사히 마치고 귀국한 나는 학교에 출강하게 되면서 마음에 맞는 동료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다. 우린 차츰 사랑을 키워갔고, 마침내 혼배성사를 드렸다.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1코린 13,2)” 나는 가톨릭 신자가 아니었던 그에게 예비신자 교리를 받게 하고 세례를 받도록 권유했다.

주님은 인생의 동반자로 허락하신 예비신랑을 주님께로 인도해 주셨다. 나는 혼배성사를 위해 늦은 견진성사를 받았다. 어릴 적 결심했던 성당에서의 결혼과 내 마음속 주례 신부님을 떠올린 나는 몇 년 만에 다시 신부님을 찾아갔다.

“신부님 저 결혼합니다. 신부님께 주례를 부탁하고 싶습니다. 신부님 시간에 맞추겠습니다. 몇 월, 무슨 요일이 좋으세요?”

신부님께서 얼마나 당황하셨는지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고 하셨다. 주님은 우리에게 혼배성사로 성가정을 이룰 수 있게 해주셨다. 어릴 적 내 마음속에 꿈을 심어주셨고, 견진성사 후 더욱 성숙한 신앙인으로 만드셨다. 나는 이 모든 것이 주님의 계획에 따라 이루어졌음을 믿는다. “주님께서 이루신 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시편 1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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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8-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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