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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단상]오손도손 저녁 나누는 공소의 여름

서정홍 (안젤로, 농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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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긋지긋한 찜통더위가 언제 끝날지 아무도 모릅니다. 누군 시월까지 더울 거라고 겁을 주지만 구월이 오면 더위가 조금씩 누그러지리라 생각합니다. 아무리 지독한 찜통더위도 자연의 순리 앞에서는 고개를 숙이고 말테니까요.

제가 다니는 삼가공소에는 주일마다 스물다섯 명 남짓 되는 교우들이 모여 신부님이 오시면 미사를 드리고 아니면 공소 예절을 합니다. 산골에 있는 다른 공소와 마찬가지로 혼자 사는 할머니 교우가 많습니다. 산골 마을에는 왜 할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시고 할머니들만 남았는지 하도 궁금하여 여쭈어 보았습니다.

“아이고오, 할배들은 지게에 치여 일찍 죽었다 아이요. 거름이고 곡식이고 그 무거운 것들을 다 지게에 지고 일을 했으이 우찌 오래 살겄소. 그라이 한마디로 말 하모 골병이 들어 죽은 기라요, 골병이.”

그 말씀을 듣고 공소 예절을 하는데 어찌나 가슴이 짠하고 서글픈지 마음 둘 데가 없었습니다. ‘내가 어릴 적부터 도시에 살면서 먹었던 양식들이 모두 지게에 치여 골병이 들어 세상을 떠난 농부님들 덕이구나!’ 하고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가진 게 없고 배운 게 없어 아무런 욕심도 없이 농사지으며 살아온 농부님들이 있어 ‘내’가 있고 ‘우리’가 있고 이 나라 경제가 이나마 발전한 것이라 생각하니 어찌 눈시울이 뜨거워지지 않겠습니까?

찜통더위에도 할머니들은 한 분 빠지지 않고 공소에 나옵니다. 기상청에 따르면 8월 1일 오후 1시 41분께 서울 종로구 송월동 공식관측소의 서울 최고 낮 기온이 38.8도로 측정됐다고 합니다. 이는 1907년 기상청이 서울 기상 관측을 시작한 이래 111년 만에 최고 기온을 경신한 수치라고 합니다.

“이 찜통더위에 교우님들을 위해 공소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얼까요?” 하고 부회장인 박종길(하상바오로) 형제에게 물었습니다. “회장님, 더위가 물러가는 8월까지, 오후 세 시에 공소 예절을 마치고 영화 한 편 보고 이른 저녁을 함께 먹고 헤어지면 좋겠습니다. 아무래도 혼자 사는 교우들은 집에 가 봐야 혼자잖아요. 혼자 밥 먹고 혼자 텔레비전 보다가 혼자 주무시잖아요. 젊은 교우들이 조금 귀찮고 힘들더라도 칠팔월 더운 달만이라도 공소에서 저녁을 해드리면 좋겠어요.”

그 말을 듣고 여성부회장인 베네딕타 자매님과 몇몇이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마침 공소에 함께 밥 먹을 수 있는 교육관이 있어 다행이라며 뜻을 모았습니다. “교육관에서 음식을 하면 덥고 힘들 테니까 젊은 교우들이 집집마다 반찬을 한 가지씩 해 옵시다.” “좋습니다. 그럼 밥만 교육관에서 하는 걸로 하지요.” “달랑 공소 예절만 하고 헤어지는 것보다 밥을 나누어 먹으면 얼마나 정이 들겠습니까요.”

그렇게 둘러앉아 뜻을 모아 7월 마지막 주일은 이른 저녁밥을 맛있게 나누어 먹었습니다. 돌아가며 흘러간 옛 노래도 한 곡씩 불렀습니다. 나이와 직책을 떠나 노래 한 곡 한 곡 부를 때마다 정이 묻어나는 손뼉을 쳤습니다. 할머니 교우님들이 이렇게 좋아할 줄 알았으면 진작 이런 시간을 가질 것을. 다음주에 부를 노래를 한 곡씩 연습해 오라는 우스갯소리와 함께 주일 하루가 깊어만 갑니다. 하느님 보시기에 참 좋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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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8-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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