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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단상] 형제님, 청년이세요?

장동민 요한 사도 하늘땅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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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수하고 있을 무렵 성당에 처음 다니기 시작했다. 한창 공부에 집중해야 할 시기인데도 나가게 된 이유는 매우 단순했다. 당시 가족 중에 유일하게 어머니만 성당을 다니고 계셨는데, 성당 갈 때마다 아버지에게 구박을 받으셨다. 그래서 어머니 마음 편하게 성당 다니시라고, 일부러 “저도 어머니랑 성당 같이 다닐게요”라고 선언했었던 것이 천주교와 인연을 맺은 계기였다.

그렇게 어설프게 성당에 나가 미사를 드리기 시작했는데, 몇 번 나가보니 꽤나 불합리한 점이 눈에 띄었다. 돈은 똑같이 내는데, 뭔가 먹을 땐 나만 안 된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불공평한가. 그래서 남들처럼 성체 받아먹겠다고 교리공부를 시작했다. 겨우 그런 이유로 교리를 받다보니 걸핏하면 수녀님께 꼬치꼬치 대들기 일쑤였다. 오죽하면 수녀님이 세례명을 지을 때 의심 많던 ‘토마스’라고 지으라고 하셨을까.

이렇게 가슴이 아닌 머리로 신앙을 시작해선지 신앙생활은 차츰 겉돌기 시작했다. 다음해 대학생이 되고 나니 더 멀어졌다. 한의대 공부도 공부지만 ‘풍물패’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사회운동에 더 관심을 갖게 됐기 때문이다. 당시 젊은 가슴 속엔 ‘종교는 아편’이라는 말이 콱콱 들어박히던 시기였다.

결국, 세례받은 지 딱 1년이 되는 6월 어느 날, 성당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작별 인사차 마지막 미사를 드리면서, 아주 발칙한 기도를 드렸다. ‘하느님,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이제 저 그만 떠나려고요. 그런데 말이죠, 저 정말 사랑하고 아끼신다면, 그리고 정말 당신이 계신다면, 저 한번 잡아보셔요.’ 지금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리지만 당시엔 정말 간절한 기도였다.

미사가 끝나고 계단을 내려가는데, 처음 보는 젊은 수녀님이 갑자기 내 팔을 붙들었다. “형제님, 청년이세요?” 얼떨떨한 상황에서 “청년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대학생”이라고 대답했더니 수녀님은 나를 붙들고 바로 주일학교 교사 회합실로 데려가서 집어넣으셨다. 사실 적당한 핑계를 대고 뿌리칠 수도 있었지만, 조금은 신기한 마음에 끌려갔었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중고등부 주일학교 여름캠프를 가야 하는데, 당장 남자교사가 모자라 일손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작은 수녀님께서 사람 낚는 낚시를 했던 것인데, 그만 내가 거기에 낚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교회를 떠나고자 하는 마음이 바뀌진 않았다. 사회에 만연해 있는 불의와 부조리에 억압받는 어렵고 불쌍한 사람들을 외면한 채, 예수만 믿고 자신들만 구원받으려는 소위 ‘예수쟁이’들만 모여 있는 곳이라는 편견 때문에 이미 마음이 떠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또 다른 기적이 일어났다. 내 옆에 앉아있던 남자교사의 이마에 반창고가 붙여져 있기에 왜 그런가 물어봤더니, 멋쩍게 웃으며 엊그제 시국집회에 나갔다가 전경이 던진 돌에 맞아 몇 바늘 꿰매고 왔단다. 아 어쩌면 이럴 수가 있을까. 갑자기 한 대 맞은 것처럼 머리가 멍해졌다.

하느님은 어린 백성이 교회를 떠나려는 이유를 다 알고 계셨고, 가장 간단한 방법으로 잡으셨던 것이다. 길 잃은 양 한 마리를 잡기 위해, 하느님은 도대체 어느 만큼이나 작업을 하신 걸까. 그렇게 신입교사로 발을 디디면서 본격적인 신앙생활은 시작됐다. 정녕코 하느님께서는 하시고자 하시면 무슨 일이든지 하실 수 있는 분이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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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8-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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