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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돋보기] 제주 4·3 사건과 ‘빼때기’

이학주 요한 크리소스토모(보도제작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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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든 푸성귀를 넣어 끓인 멀건 죽에 찬이라고는 썩은 감자와 곰팡이 앉은 고구마가 전부. 변변한 그릇 하나 없는지 녹슨 탄통에 담겨 있었다. 영화 ‘지슬’과 소설 ‘순이삼촌’도 보여주지 못한, 제주 4ㆍ3사건의 적나라한 실상이었다.

‘굶주림의 기억’. 피란 음식을 재현한 양용진씨는 4ㆍ3을 이렇게 정의했다. 제주향토음식 명인 1호인 어머니 대를 이어 제주의 맛을 지키는 그였다. 어느 날 주먹밥을 4ㆍ3 피란 음식이라고 전시한 모습을 보았다. 벼농사가 안 돼 쌀 한 톨 귀한 제주에선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양씨가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것이 조리법만은 아니었다. 고통과 한(恨) 역시 대물림받았다. 그는 70년 전 ‘진짜’ 제주의 밥상을 보여주기로 결심했다.

착잡한 심정으로 양씨의 작품을 살피던 중 낯선 음식이 눈에 들어왔다. 얇게 썰어놓은 고구마였는데 어찌나 바싹 말렸는지 돌같이 딱딱했다. 제주에서는 이 말린 고구마를 뼈다귀처럼 단단해 ‘빼때기’라고 부른다고 양씨가 알려줬다. 피란민들은 빼때기를 손톱만큼씩 떼어내 입에 넣곤 반나절 동안 침으로 녹여 먹었다고 한다.

피란민들의 소중한 주식 빼때기는 본디 식용이 아니었다. 당면과 주정 가공에 쓰이는 원료였다. 그렇게 만들어진 가공품은 일본군의 전투식량으로 쓰였다. 제주 곳곳에 세워진 전분 공장은 일제 패망 후에도 그대로 남았다. 덕분에 피란민들은 그나마 빼때기라도 건져 산으로 동굴로 도망갈 수 있었다. 침략자의 유산이 피란민들의 목숨을 살렸으니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빼때기를 보며 문득 기해박해를 떠올렸다. 180년 전 ‘척사’의 미명 아래 70명이 넘는 신앙 선조들이 순교했다. 끝까지 그들을 지탱해준 것은 신앙이었다. 1세기가 지난 뒤 ‘반공’의 기치 아래 죄 없는 3만 제주도민이 ‘빨갱이’로 몰려 희생됐다. 빼때기는 마지막까지 그들과 함께했다. 생명과 희망의 빼때기. 그 하얀 단면에서 성체가 겹쳐 보이는 것은 기분 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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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9-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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