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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진단] 아프리카에서 한반도 보면 ‘걱정’(설지인, 마리아 막달레나, 아프리카개발은행 개발금융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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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은 「여유당전서」에서 사신의 막중한 임무로 ‘점국(國)’을 논했다. “옛날에 대부로서 다른 나라에 사신 가는 자는 하나의 작은 일을 보고서도 그 나라의 예의가 돈독한가 그렇지 못한가를 알며, 한 가지 미미한 사물을 보고서도 그 나라의 법 기강이 해이한지 확립되었는지를 알아 나라의 성쇠를 점치고 흥망을 결단하였으니, 이를 일러 ‘그 나라를 엿본다(國)’는 것이다.” 19세기에 이러했다면 21세기 우리는 이제 이방에서 그 나라를 넘어 세계정치의 흐름까지도 읽어내야 한다.

19세기 아프리카 대륙은 제국주의 열강들이 자원과 군사적 목적을 위해 몰려와 각축을 벌이던 땅이었다. 이후 냉전 시기에는 서로 다른 체제를 택한 신생 독립국들을 향해 구소련 연방과 서방 열강들이 몰려왔다. 그런데 오늘날 양상은 과거와 다르다. 제국주의 시대나 냉전 때와 같은 제로섬 게임은 이제 지나간 이야기이다. 유럽 국가들이 투자한 무선 통신 네트워크 위에 현지 스타트업들이 사업을 하고, 중국이 놓은 도로 위로 미국과 일본 자동차들이 다닌다.

세계 여러 국가가 아프리카와 교류를 강화하는 데 신경 쓰고 있다. 2010년에서 2016년 사이 아프리카 각지에 320개 넘는 대사관 및 공관이 문을 열었다. 그에 발맞춰 정치·군사 협력도 강화되고 있다. 미국과 프랑스는 지하디스트에 대항하기 위해 사헬 지역 나라에 무기와 기술을 제공하고 있고, 중국은 45개 넘는 아프리카 국가들과 국방기술협력 관계를 맺었다. 현재 중국은 사하라사막 이남 지역에서 최대 무기 공급자이다.

2006년 아프리카 대륙의 가장 큰 교역국은 순서대로 미국, 중국, 프랑스였다. 그러나 현재 이 순위는 중국, 인도, 미국으로 바뀐 상태이고, 지난 12년간 아프리카와 인도네시아, 그리고 터키와의 교역량은 세 배 이상, 러시아와의 교역은 네 배 이상 증가했다. 여전히 주요 해외직접투자 자금은 미국, 영국, 프랑스에서 유입되나 중국 자본이 빠른 속도로 쫓아오고 있다. 인도와 싱가포르 투자자들 역시 급속히 부상하고 있다.

이처럼 아프리카 국가들은 더 이상 과거 냉전 시대처럼 어느 한쪽 편에 서지 않아도 된다. 이들은 서방의 투자로 함께 사업하면서도 중국, 러시아와 교역하고 군사협력을 맺는다. 다른 국가들도 무엇이든 제공할 것이 있다면 아프리카 측에서는 협상 테이블에 나설 것이다. 일부 아프리카 국가들은 물론 이들이 만든 개발금융기구들은 이미 그렇게 해오고 있으며, 다원화된 선택지는 그만큼 이들에게 갈수록 유리한 협상 지위를 제공해 준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한반도를 바라보고 있으면 상당히 우려된다. 한국을 둘러싸고 있는 냉전의 잔해와 대외 정세의 어려움을 뚫고 나갈 동력은 과거의 틀에 갇힌 낡은 눈으로 절대 찾을 수 없다. 그런데 적지 않은 국내 정책입안자들의 시야가 과거에 묶여 있다. 세계 흐름에 대한 민감성, 판단력, 유연성 등에 있어서는 일부 아프리카 핵심 엘리트들의 수준에 미치지 못해 보인다.

식민지와 냉전을 경험한 다른 지역에서는 체스판 게임의 규칙이 변하고 있다. 우리는 해가 갈수록 더 큰 광복을 맞이해야 하지 않겠는가. 한반도 주위의 난국을 헤쳐나감에 있어 한국이 더 강하고 열린 세계 인식의 주체성을 지니는 것이 시급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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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9-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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