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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단상] 세상에서 가장 좋은 집(신달자, 엘리사벳,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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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중학교 시절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의식주(衣食住)에 대해 설명하시면서 무엇이 가장 으뜸이냐고 물으신 적이 있습니다. 50명이 넘는 학생 중에 제가 가장 먼저 큰 소리로 “집이요!” 하고 외쳤습니다. 조용하던 좌중이 갑자기 웃음을 쏟아냈습니다. 민망했던 기억이 있지만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습니다. 물론 음식도 옷도 소중하지만, 왜 그런지 가슴 안에는 늘 좋은 집이 그리웠습니다. 음식은 나물만 먹어도 좋을 것 같고, 옷은 적당히 저렴하게도 멋을 부릴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집은 제 능력으로 척척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라서 꿈속에서 상상의 세계를 키울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어릴 적 아버지가 지으신 한옥은 좋은 집이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영화를 보아도 좋은 집이 나오면 내용보다 집에 마음을 빼앗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결혼 후도 그 꿈을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늘 불만이었고 꿈은 커져만 같습니다.

나이란 꿈도 축소시키는 힘을 가졌는지 점점 집에 대한 꿈이 줄어들고 있을 때, 생각지도 않게 집에 대한 꿈을 이루었습니다. 새벽기도마다 한마디씩 후렴으로 넣은 기도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맞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집에서 살게 됐습니다. 어떤 집일까요? 딸 세 가족과 함께 사는 집입니다. 딸 셋과 사위 셋, 손주 셋과 저까지 열 명의 가족이 함께 사는 집을 지었습니다. 물론 한 지붕 안에 집은 다른 가족이지요. 이만하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집이 아닐까요?

사실을 말씀드리면 집들은 많이 불편합니다. 평수도 넓지 않습니다. 자식이 아니라면 이런 불편을 감수하라고 하느냐며 얼굴을 붉힐 법도 합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또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런 것을 강요하면 저는 엄마도 아니지요. 가톨릭 신자도 아닙니다. 그러나 딸들은 자기 집을 챙기면서도 엄마의 불편을 먼저 생각해 줍니다. 딸들은 새집에 대해 얼마나 할 말이 많겠습니까.

그러나 저는 감사합니다. 행복합니다. 무엇보다 사위들이 마음을 함께 모아준 것을 고맙게 생각합니다. 주차장이나 계단에서 만나면 환하게 웃습니다. 우리는 서로 비밀번호도 모릅니다. 지킬 것은 지키며 예의를 지킵니다. 지하 패밀리 룸에서 서로 차도 마시고 술도 마시고 환담도 합니다. 와도 좋고 안 와도 좋습니다. 자유가 첫째 조건입니다.

전 복이 참 많다고 생각합니다. 벽 너머에 제 딸들의 가족이 있다고 생각하면, 그들이 열심히 산다고 생각하면, 그들이 기도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우리가 모두 하느님의 아들딸이라고 생각하면 가슴이 벅찹니다. 이만한 복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제 시간이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은 생의 가을에 가족이 함께 사는 집을 저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집이라고 감히 말합니다. 집을 지을 때 딸들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손해 본 만큼 내 언니나 동생에게 이익이 간다고 생각하면 무엇이 아쉽겠는가”라고 성모님이 말씀하고 계신다는 것만 기억하라고요.

주님, 부족하고 못난 저에게 주신 이 엄청난 선물에 온몸을 다해 감사기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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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9-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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