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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편지] 어느 디아스포라의 귀향 / 반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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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둑한 둑을 깔고 앉아 고구마를 캔다. 45도 각도로 흙을 깊게 파야 깊숙이 숨겨놓은 고구마에 닿을 수 있다. 같은 동작을 좌우로 반복하다 보면 이랑을 덮는 수확물에 뿌듯한 보람이 차오른다. 이럴 때 막연히 하늘을 본다. 아득하게 멀어진 호수의 물빛이 청아하다. 바로 눈앞에 잠자리 떼가 호수를 헤엄친다. 얼마 만에 보는 하늘인가, 얼마 만에 만져보는 흙인가. 맨손에 착 감기는 흙이 엄마의 젖가슴이다.

나는 오늘 5개월 만에 농막에 왔다. 승용차로 20분 거리에 농장을 두고서도 떠돌이별처럼 살았다. 4월 그믐께 고구마 싹을 심었으니 114일의 성숙기를 지나 수확할 때에서야 얼굴을 내민 것이다. 돌보지 않았으니 수확의 주인이라 하기도 염치없는 일.

그럼에도 땅은 말없이 싹을 품어 줄기를 키우고 땅속에 고구마를 키워냈다. 사람 같으면 생색내기로 바쁠 터. 이 편안함보다 더 소중한 것이 무엇인데 시간을 쪼개고 잠을 축내며 애면글면한 날이 부질없다. 무슨 대단한 성취를 이룬다고 고향의 어머니를 모른 체하고 사는지.

고구마 줄기를 먼저 베어내고 둑을 덮었던 비닐을 벗긴 후 본격적으로 작업에 들어간다. 호밋자루에 힘이 실린다. 농부였던 옛 감각이 살아난다. 그건 바로 생명력이다. 온몸의 세포가 기억조차 생생하게 반응한다. 흙을 푹 파서 헤쳐 내던 손끝에 부드러운 촉감이 와 닿았다. 펄떡 주저앉았다. 새끼 쥐가 한 덩어리가 되어 고물거린다. 흙 속에서 드러난 생명들은 눈도 못 뜨고 허둥댄다. 어미 쥐가 안전한 곳을 찾다가 이랑을 파고 몸을 푼 것이다. ‘에구, 저걸 어째? 어미는 어디 가고?’ 너무 놀라서 얼른 흙을 덮어준다.

어디 이뿐인가. 고구마를 캐다 보면 땅강아지도 나오고 지렁이는 다반사다. 고구마 옆에 하얗게 알을 슬어 놓은 개미도 본다. 흙은 제 가슴으로 파고드는 모든 생명을 밉다 곱다 안 하고 무던하게 품는다. 티도 안 내고 짜증도 안 내고 기다리는 어머니 눈길을 본다.

나는 왜 마음의 고향을 지척에 두고 유랑하고 있는 걸까, 나뿐만이 아니라 많은 현대인들이 고향을 떠나서 생존경쟁 대열에서 전쟁터 같은 삶을 살고 있다.

너무 지쳐서 이웃도 싫고 가족도 부담스러워 혼자의 성을 높이 쌓고 마음을 앓고 산다. 시간의 노예가 되어 시시각각 스마트폰으로 정보를 검색하고 식사할 시간을 못 내서 햄버거를 들고 운전을 한다.

시간이 돈이 되는 세상에서 마음 깊은 곳에 고향을 두고 경쟁에 떠밀려 나중에를 외치며 오늘을 버틴다. 나는 이들을 현대의 디아스포라라 여긴다. 떠도는 사람들, 좌정을 하고 싶어도 가속도가 붙어서 스스로 멈추지 못하는 우리의 자화상이다.

고향은 지리적인 공간만은 아닐 것이다. 사람이 본래적으로 돌아갈 곳. 그러면 그곳이 어디인가. 모든 생명을 품어 안는 흙이 진정 우리의 고향인가. 영혼이 떠난 육신이 돌아가는 곳, 거기가 본래 자리일까.

오늘 모처럼의 한가한 주말, 나는 고구마를 캐다가 ‘진정 내 고향은 어디인가’ 물음의 여행을 떠난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숙자(베르나데트)
수필가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9-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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