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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화해·일치] 스포츠답게 / 박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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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5일에는 2022년 카타르 월드컵 2차 예선 H조 경기가 열렸습니다. 이번 경기는 월드컵 예선이라는 흥분과 함께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남과 북이 예선전을 치른다는 재미도 있어 시작 전부터 여러 기대들이 있었습니다. 선수단과 응원단은 어떤 경로로 갈 것인지, 경기 내용은 생중계될 것인지, 애국가 연주와 태극기 게양은 될 것인지 등등 말이죠.

일단 애국가 연주와 태극기 게양은 국제축구연맹(FIFA) 규정에 따라 북쪽이 다른 국가와 동등하게 대우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어 문제될 것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선수단은 40분이 걸리는 서울-평양 직항로 대신 2일이 걸리는 서울-베이징-평양의 우회로로 이동하게 됐습니다. 응원단도 경의선 열차나 직항로를 이용하는 방식 등이 거론되기도 했지만 결국은 성사되지 못했지요. 우리 선수들로서는 응원단이 없는 시합을 치러야 했습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때 우리가 북쪽 선수단과 응원단의 방문을 허용했던 점을 생각해 보면 북쪽의 태도는 참으로 옹졸해 보입니다. 스포츠는 스포츠일 뿐입니다. 스포츠에 정치적인 색깔을 칠하는 건 국제사회의 인식과는 먼 모습입니다. 국제사회의 제재 하에서 ‘직항로 이용’과 ‘응원단 파견’을 어렵게 승인받았음에도 북쪽이 협의에조차 응하지 않았던 점은 매우 아쉬운 대목입니다.

물론 선수들은 이러한 환경도 경기의 한 부분이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응원단이 없다고 해서 요즘 표현으로 ‘멘탈이 흔들린다’거나 ‘멘붕’이 오면 안 되겠지요. 어떠한 상황에서도 유감없이 실력발휘를 해야 하는 건 선수들의 몫입니다. 그럼에도 국내 축구팬들이나 국민들 입장에서는 이러한 북쪽의 모습이 답답해 보입니다. 여전히 정치와 스포츠를 분리하지 못하는, 그래서 국제사회의 규범을 따르기에는 부족한 국가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스포츠라는 말은 ‘물건을 운반하다’는 뜻의 라틴어 ‘portere’에서 유래됐다고 합니다. 이후 ‘일을 멈추다’라는 뜻의 고대 프랑스어 ‘desport’와 영어 ‘disport’를 거쳐 지금의 ‘sports’로 변한 것이죠. 그런 점에서 죽을 때까지 싸운다는 의미를 갖는 고대 그리스의 ‘agonize’와는 다른 개념입니다. 정치, 군사적인 영역에서는 갈등이 있더라도 잠시나마 이를 멈추고 ‘sports’의 원래 의미에 맞게 놀아볼 수는 없었을까 아쉬움이 듭니다. ‘sports’답게 말이죠.

“나라마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 민족들은 칼을 들고 서로 싸우지 않을 것이며 다시는 군사 훈련도 하지 아니하리라”(이사 2,4)고 하신 말씀이 떠오릅니다. 모두가 땀 흘리는 스포츠가 민족 간 분쟁을 멈추게 하는 기회가 되길 기원해 봅니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박천조(그레고리오)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연구위원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9-10-22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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