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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의 눈] 물고기와 어항 / 오세일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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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항이나 수족관 속에 물고기들을 키워 보셨는지요? 어항 속에는 물과 다양한 물고기, 수초와 먹이 등이 함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어항 속에서 어떻게 해야 물고기들이 병들지 않고 건강하게 살 수 있을까요? 세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째 어항 속 물고기들에게 적당한 양의 먹이가 골고루 주어져야 합니다. 크고 작은 다양한 물고기들이 있을 경우, 먹이가 부족하면 덩치 크고 힘센 놈들만 독식을 하고, 때론 큰 놈들이 작은 놈들을 잡아먹기도 합니다. 둘째 어항 속에는 수초, 바닥재, 모터나 조명등 등 ‘내부 장치’들이 있는데, 어떤 종류로 선택하고 어떻게 사용하는가 하는 문제도 매우 중요하지요. 셋째 무엇보다도 물이 좋아야 합니다. 물 속에 배설물, 이끼가 많으면 물고기에 유익한 박테리아는 적어지고 암모니아가 많이 발생해 물이 혼탁해지지요.

이렇듯 물고기들이 건강하게 잘 살려면, 물과 어항 전체를 헤아리고 돌보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물과 어항, 전체 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물고기에만 신경쓰는 것으론 크게 부족합니다. 병든 환경을 고치지 않는다면 아픈 물고기들을 하나하나 밖으로 꺼내 영양주사를 놓아주고 다시 그 어항에 넣어준다고 한들, 물고기들이 잘 살아갈 수 있을까요?

사회 속에 살아가는 우리 인간들도 어항 속의 물고기들과 매우 유사합니다! 개개인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어항에 해당하는 사회적 환경 전체를 고려하고 개선해야만 합니다.

첫째, 약육강식의 자연 상태가 아니라 인간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적당한 먹이, 즉 ‘재화와 일자리, 기회’가 공평하게 제공돼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는 칼 폴라니의 지적처럼 ‘인간 사회’가 아니라 ‘시장과 이윤’을 극단적으로 우선시하며 적자생존과 양극화를 정당화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신자유주의 경제독재’를 경계해야 한다고 누누이 강조하십니다.

둘째, 어항 속 부대 장치들에 해당하는 ‘사회 제도’가 잘 갖춰져야 합니다. 특정한 이들에게만 이롭고 힘없는 이들은 소외시키는 법과 제도가 있다면, ‘보편적 인권과 공동선’의 기준으로 끊임없이 평가하고 개혁해 나가야 합니다. 예컨대, IMF 이후 노동자를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차별하는 제도는 개혁될 필요가 있습니다. 캐나다에선 계약만료 이후 노동시장을 전전해야 할 비정규직에게 정규직보다 더 높은 임금을 줍니다. 또, 정치인과 검찰 등 파워엘리트가 권력남용으로 범죄를 저지르고 기득권으로 덮지 못하도록 공수처를 설치해서 공평무사하게 운용하는 것도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법과 규범, 제도를 정하고 실행하든지, 그에 따른 장단점을 성찰하고 피드백을 통해 개선하고 보완하는 책임과 의무를 ‘제도의 책무성’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건강한 사회를 이루기 위한 토대입니다.

셋째, 물고기가 숨 쉬고 살아가는 물이 좋아야 하는 것처럼, 일상을 살아가는 개인 삶의 자리에서 이뤄지는 삶의 양식, 문화가 건강해야 합니다. 탐욕과 독식, 비교와 경쟁, 차별과 혐오를 재생산하는 문화에서 개인은 타인에 대한 이해와 배려, 공존과 협력을 추구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문화 속에서 상처 받은 사람들은 자신의 생존과 힐링에만 매달리게 되고 자칫 ‘개인주의의 덫’에 걸려 허우적대기 쉽습니다.

우리 교회는 그간 ‘개인 영혼의 구원’만을 강조하느라 사회구성원 모두가 건강해질 수 있는 ‘공동체와 사회 복음화’에는 소홀했던 한계에 관해 고백해 왔습니다. 공동체 전체를 위해, 특별히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을 위해 사회의 제도와 정책을 개선하려는 이들을 불온한 빨갱이로 취급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구원하고자 하시는 대상은 나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이 세상’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주셨다”고 요한복음(3,16)은 선포합니다. 자비로우신 창조주는 어항 전체를 돌보시며 물고기들 모두가 더욱 건강해지기를 바라십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역시 ‘하느님의 백성들’ 안에서 하느님께서 성덕을 베푸시고 구원을 이루신다는 점을 강조합니다.(「교회헌장」 9항)

초대교회부터 ‘물고기’로 상징돼 온 그리스도는 세상의 정화와 모든 인간의 구원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셨습니다. 우리 교회도 예수님을 따라 ‘사회 복음화’에 충실해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개인과 가족의 구원과 성공을 위해서만 기도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창조주께서 바라시는 대로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이 사회가 정화돼 보다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상이 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세일 신부
(예수회,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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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9-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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