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8월 6일 아침,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졌다. 생존자들은 원폭이 떨어지기 전 흰색 섬광이 도시 전체를 감쌌다고 기억했다. 사람들은 증발했다. 신체 일부가 잘려나갔고, 숯처럼 타버렸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폭은 20만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갔다. 대부분 민간인이었다.
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였을까. 원자폭탄목표선정위원회는 몇 가지 조건을 두고 목표 도시를 정했다. 지름 4.8km 크기의 중요한 역할을 하는 도시이자 원폭 피해가 효과적으로 측정될 수 있는 곳일 것. 더불어 연합국의 폭격 계획이 없는 장소일 것. 주민을 배제한 셈법은 인류를 고통 속에 빠뜨렸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세계 유일의 피폭국 일본을 찾았다. 교황은 희생자들을 위로했고, “핵무기는 절대 정당화될 수 없다”는 엄중한 메시지도 남겼다.
그러나 도시는 고요했고 시민들의 관심은 뜨뜻미지근했다. 원폭의 상처를 떠안고 사는 일본 국민으로서 비핵화를 강조하는 교황 방문의 의미는 클 터인데, 그저 유명인의 방문 정도로만 인식하는 듯했다.
일본 정부의 태도도 별반 다를 게 없다. 일본은 세계 유일 피폭국임을 내세우고, 핵무기로 인한 피해를 홍보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핵무기금지조약에는 참여하지 않고 있다. 군비 확대 의지도 여전하다.
‘지상의 평화’를 향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호소가 과연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정치인들의 셈법은 74년 전 과거를 되풀이할 여지를 주고 있고, 국민의 무관심은 참혹한 역사의 교훈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이 지구 상엔 공식적인 핵보유국만 5개국이다. 핵무기를 내세우며 비평화적인 대화를 시도하는 국가도 여전히 존재한다. 우리 모두 교황이 바친 ‘평화의 기도’에 힘을 보태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