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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화해·일치] 전쟁의 얼굴 / 강주석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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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市當局(시당국)에서는 數日內(수일 내)로 市內(시내)에다 聯合軍(연합군)의 勞苦(노고)에 報答(보답)하는 聯合軍慰安所(연합군위안소) 五個所(오개소)를 新舊馬山(신구마산)에 設置(설치)하기로 되어 이의 許可證(허가증)을 임이 發付(발부)하였다는데 앞으로의 市民(시민)의 많은 協力(협력)을 要望(요망)하고 있다.”

위 문장은 1950년 8월 11일자 부산일보에 실린 기사로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두 달이 채 되지 않은 시기였지만, 마산에 연합군을 위로하기 위한 ‘위안소’를 설치할 것이라는 안내문이다. 일제의 압박 속에서 ‘불의한 전쟁’에 동원됐던 우리 민족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도 온전히 해방되지 못했고, 분단의 비극 속에서 이내 다시 비참한 전쟁을 겪어야 했다. 앞에서 인용한 부산일보의 기사가 ‘연합군위안소’의 기능을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지만, 아직 전쟁 초기인 1950년 8월 초, 낙동강 전선이 구축되던 때에 벌써 이런 조치들이 이뤄지는 것을 보면, 결코 정의로울 수 없는 추악한 ‘전쟁의 얼굴’을 잘 드러내는 기록이라고 생각한다.

가톨릭교회의 사회교리는 “결코 다시는 일부 민족들이 다른 민족들과 대적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더 이상, 더 이상 전쟁은 없어야 한다”는 말로 전쟁의 ‘야만성’을 강력하게 단죄한다.(「간추린사회교리」 497항) 최근 들어 더 강하게 비판을 받는 ‘정당한 전쟁’에 관한 가르침도 어쩌면 무분별하게 폭력이 자행되는 전쟁을 최소화하려 했던 노력의 결과로 볼 수 있다. 폭력을 통해 갈등을 해결하려는 것이 이 세상의 방식이지만 이러저러한 기준에 맞지 않는다면 전쟁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사실 정당한 전쟁이론은 ‘전쟁에 대한 권한’(Jus ad bellum)뿐 아니라 그 수행 과정에서의 정당성 문제(jus in bello)도 다루는데, 물론 현실의 전쟁은 그러한 조건들을 충족할 수 없었다. 전투원과 비전투원을 구분하라는 ‘차별(Discrimination)의 원리’를 두고만 보더라도 대규모의 살상이 가능해진 현대전에서 군인과 민간인의 피해를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언제나 그리고 어디서나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는 어린이와 가난한 여성 등 사회적 약자였으며, 따라서 정당할 수 있는 전쟁은 역사상 존재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존재할 수 없다.

올해 우리는 한국전쟁 발발 70주년을 맞이하고 있다. 아직 ‘종전’하지 못하고 ‘두려움의 적대’라는 전쟁의 악이 여전히 위세를 떨치는 이 땅에서 우리 교회는 비폭력의 평화를 위해 더 간절히 노력해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어렵고 먼 길이지만 대화와 타협을 통해 평화를 추구할 수 있다는 희망을 더 용감하게 선포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평화에 대한 그 희망이 바로 우리가 믿는 복음이기 때문이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강주석 신부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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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9-12-30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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