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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단상] 은퇴 후 계획을 물으신다면(임주빈, 모니카, KBS 심의위원, 시그니스 서울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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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퇴직이 몇 년 남지 않으니 많은 분이 은퇴 후 계획에 대해서 물어보십니다. 저는 계획이 없습니다. ‘35년이나 한 직장에서 열심히 근무했으면 됐지, 퇴직 후에 또 무엇을 하겠다고 계획을 세워야 하는가?’ 하는 생각도 들고, 계획을 이루기 위해서 또 새로운 노력을 해야 한다니, 게으른 저에겐 형벌이나 진배없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돌아보면 제 인생에서 계획대로 된 것이 뭐가 있는지 잘 모르겠기 때문입니다. 계획은 거창하지만, 현실적인 여건들이 따라주지 않거나 갑작스러운 일이 발생하여 계획이 무산된 일, 이리저리 궁리할 때는 영 안 되다가 시간이 지나서 저절로 이루어진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학창 시절 계획대로라면 저는 의대나 치대에 입학했거나(대학 입시 성적이 잘 안 나와서 실패),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의, 치대를 못 가서 차선책으로 자연과학계열로 입학했으니) 실력 있는 과학자가 돼야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고등학교에서 이과 공부를 하고, 자연과학계열로 입학했지만 뒤늦게 이과 공부가 제게 맞지 않음을 깨닫고 대학교 3학년부터 문과로 옮겨서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입사 원서를 내기 전까진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방송사에 입사해서, 라디오 클래식 음악 채널에서 오랫동안 일을 했습니다. 모두 젊은 시절 제 계획에 없었던 일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개신교 신자인 부모님 밑에서 자랐고 한때는 동네 교회에서 주일학교 교사도 한 적이 있는 제가 어찌하여 뒤늦게 가톨릭 신앙을 갖게 되고 가톨릭커뮤니케이션협회(SIGNIS) 회장이라는 중책까지 맡게 된 것인지, 이 역시 제가 계획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제 인생의 설계자는 제가 아니라 주님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지난날 일이 제 계획대로 안 되어서 속상했지만, 나중에 살펴보면 그때 잘 안된 것이 다행이었거나 오히려 더 잘된 일이었던 적이 많았습니다. 주님이 설계하시니 어련하시겠습니까. 주님은 언제나 제게 딱 맞는 더 좋은 것을 주시곤 했습니다.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것까지 고려해서 맞춤형으로 주셨던 것입니다.

이러하기에 퇴직 후에 무슨 일을 할 것인지 계획을 짜는 것이 부질없는 일 마냥 느껴집니다. 물론 하루하루, 일주일, 한 달, 일 년 단위의 일상적인 일들에 대해선 실행방안을 세우겠지만, 대체로 인생의 큰 틀에서 내 의지로 계획을 세워서 무슨 일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이젠 더 고민하지 않으려 합니다.

무슨 일을 할 것인지 보다는 주님이 주신 일, 이래저래 하게 된 일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만 고민하기로 했습니다. 그것만큼은 부끄럽지 않게 주님 마음에 들게 하고 싶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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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0-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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