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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의 눈] 새해, 화해와 평화의 길을 묻다 / 임미정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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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글을 시작하며 주님 축복의 말씀으로 인사드립니다.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들어 보이시고 그대에게 평화를 베푸시리라.”(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제1독서, 민수 6,26)

최근 극영화로 개봉된 페르난두 메이렐리스 감독의 ‘두 교황’을 아주 감명 깊게 보았습니다. 이 영화는 현시대에 공존하는 두 교황, 베네딕토 16세와 프란치스코 교황의 만남을 이야기로 다뤘는데, 비록 극영화의 가상적 요소가 있겠으나 교회사의 평화적 전환을 이룬 두 교황의 만남을 사실성과 위트, 신앙적 감수성으로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영화에서 가장 아름답고 인상 깊었던 장면은 두 교황이 대화를 통해 서로에게 고하는 고해성사와 이후 강복의 장면이었습니다. 하느님과 자신, 아픈 과거와 화해하는 이 장면은 영화에서도 전환점이지만, 또한 교회사에서도 새로운 전환을 이루는 시간을 ‘화해와 평화의 표징’으로 표현했으리라 여겨졌습니다. 새로운 전환을 위한 시간에 최근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이를 해소하기 위한 신앙인으로서의 노력을 새해를 맞이해 발표한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세계 평화의 날 담화문에 비추어 돌아봅니다.

저희는 공동체가 광화문 근처에 있어 주말마다 열리는 대규모 집회로 어려움을 겪는 수녀님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잠시 외출하고 돌아오는 길에 집회 참여자로부터 듣게 되는 욕설과 침 뱉음, 경미한 폭력의 경험과 위협적인 분위기에서 오는 두려움의 호소들, 그리고 얼마 전까지 매주 월요일 광화문에서 봉헌된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미사’ 전후에는 몇몇 신자들로부터도 이런 비슷한 모욕적인 언사들을 듣게 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이런 경험들을 하면서 현재 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여러 갈등을 돌아볼 때 많은 부분이 분단 역사와 그에 따른 이념갈등에서 비롯된 것들이 많아 그 사이에서 상처받는 이들을 떠올릴 때면 늘 마음이 무겁습니다. 남북분단은 한반도 전체가 겪은 아픔이며, 그 사회에 포함된 교회의 아픔이고, 저희 수도회도 설립당시 모원이 평양이라 피난민으로서의 아픔을 안고 통일의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새해를 맞이하며 진정한 ‘화해와 평화’에 대한 갈망이 더욱 절박하고 깊어짐을 느끼게 됩니다.

해마다 교회는 새해를 맞아 세계 평화의 날 담화문을 발표하는데 마침 올해 제53차 세계 평화의 날 담화에서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대화와 화해와 생태적 회심’이라는 주제로 ‘희망의 여정으로서의 평화’에 대한 내용을 발표하셨습니다. 교황님은 담화문에서 ‘다른 사람을 결코 그가 한 말이나 행동에만 국한시켜 바라보지 말고, 그 사람이 자신 안에 지니고 있는 하느님 약속을 보고 그를 소중히 여기는 존중의 길을 선택’할 때 평화를 향한 희망의 여정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서로 경청하며 이해하고, 대화를 통한 평화의 여정에, 그리고 인내와 신뢰로서 용서하며 마음으로부터 서로를 형제자매로 발견하는 화해의 여정에 함께 할 것을 촉구하십니다. 또한 교황님은 전쟁의 상흔을 고스란히 간직한 일본원폭피해자들(히바쿠샤)을 언급하시며 이들이 과거의 아픔을 딛고 미래세대를 위한 증언자로서, 기억의 지킴이로서 평화활동에 참여하는 것에 큰 찬사를 보내십니다.

영화에서, 성격과 취향 등 여러 면에서 다른 두 교황은 교회에 대한 사랑과 헌신의 방법도 매우 달랐습니다. 하지만 교회를 사랑한 만큼 교회의 새로운 전환을 위해 진심어린 대화를 나누고 서로 경청하며 공감하고, 교회가 세상과 화해하는 새로운 여정을 시작합니다. 우리도 세대가 다르고, 현실상황이 다르고, 정치성향이 다를지라도 민족사에서 함께 겪은 아픔에 대해 서로 경청하며 그 아픔에 공감하고 대화를 통해 평화의 여정으로 함께 나아가기를 간절히 희망합니다. 또한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과거 자신의 잘못된 판단으로 일어난 상처와 아픔을 승화시켜 더 가난하고 겸손한 모습으로 세상과 화해하고 교회의 종으로서 전 세계에 평화를 전하고 계십니다. 우리도 한반도의 잘린 허리처럼 전쟁의 상흔을 지닌 ‘상처 입은 치유자’로서 한반도의 평화와 동북아의 평화, 더 나아가 세계의 평화를 위한 일꾼으로 나아가길 희망합니다.


임미정(살루스) 수녀는 1998년 영원한도움의성모수도회 입회, 본당 전교활동을 비롯해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 강북평화의집, 울주군 나자렛공동체 등에서 빈민들을 위한 활동을 펼치고, JPIC양성학교 3기를 졸업하는 등의 활동을 해왔다. 현재 한국천주교 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 생명평화분과 분과장을 맡고 있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임미정 수녀 (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 생명평화분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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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0-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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