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
사람과사회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주말 편지] 꿈을 그리다 / 임수향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이사를 했다. 오래전부터 살고 싶었던 곳인데 드디어 입주를 했다. 경기 성남에 입성 한지 어느새 20여 년이 훌쩍 넘는다. 그 많은 세월을 어떻게 보냈을까? 순간순간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겠지. 지금의 나는 웃고 있으니까. 창문에 그려진 공원을 바라보며 감사드리고 있으니까. 1기 신도시 때 분양을 받아 이곳에 왔지만 분양받은 곳에 살지 않고 그 옆 동네에서 살았다.

동네도 익힐 겸 틈틈이 운동 삼아 공원을 산책했다. 말이 공원이지 산에 더 가깝다. 나무도 울창하고 돌계단도 길다. 새들의 합창은 눈과 귀를 번쩍 뜨이게 한다. 어디에 앉아 노래하는지 두리번거려도 못 찾을 정도다.

공원 산책길 아주 가까운 곳에 아파트가 있다. 아니 울타리와 산책길이 함께 있다. 뒤에는 공원이요, 앞에는 도로가 넓어 교통이 편리하니 무엇을 더 바랄까. 공원을 내려오면서 아파트 입구 부동산에 들렀다. “여기는 나온 게 없습니다. 이사를 가지 않아요.” 20여 년 전 일이다.

그동안 공원을 찾을 때마다 바라보았던 아파트. 그렇게 그리던 아파트에 이사를 온 것이다. 나온 집이 귀하다고 했던 곳에 둥지를 틀게 되었다. “공원을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을 찾고 있어요.” 다른 말은 필요 없었다. 중개사님은 의미 있는 웃음을 지으시면서 이곳으로 안내하셨다. 설레는 마음으로 계약을 했다. 나뭇잎 사이로 보이던 그 동이다. 그것도 공원을 훤히 바라볼 수 있는 고층이다.

남서향이라 일출 일몰의 장관도 볼 수 있다. 새벽녘 일출은 서재에서 본다. 구름을 헤치고 하루의 서막을 여는 해님은 신비롭다. 굳이 바다를 가지 않아도 아파트 창에서도 볼 수 있으니 감사의 잔은 넘칠 뿐이다. 서재의 불투명 유리를 투명 유리로 교체했다. 창틀이 사계절을 담은 커다란 액자가 되었다. 여름이면 매미도 날아와 방충망에 앉아 낮잠을 즐기다 간다.

감탄을 잠시 진정시키고 나면 오전 10시부터 앞 베란다에 햇살이 깃든다. 그 후 하루 종일 함께한다. 얼굴을 가리고 해를 따라 누워 있으면 온몸에 피곤이 녹아내린다. “햇살 밝은 창가에서는 감히 누구라도 용서할 것 같다.”고 한 말이 떠오른다.

붉은 노을에 물든 서쪽 하늘은 화려하다. 장마가 그치면 구름을 펼쳐놓고 하루를 내려놓는 해의 모습은 장엄하다. 폰 카메라지만 많은 일몰을 담았다. 음력 초사흘 초승달은 또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가시지 않은 노을을 배경으로 반짝이는 별 하나 벗 삼아 앙증맞은 모습을 잠시만 보여 준다. 도심의 아파트에서 마주 볼 수 있으니 고마울 따름이다.

살아오면서 버리지 않았던 연장이며 소소한 가구들도 이곳에 오니 모두 사용하게 되었다. ‘언젠가는 쓸 수 있겠지.’하는 생각이 현실이 되었다. 공원을 거닐며 입주하고 싶었던 아파트에 지금은 살고 있다. 멀리서 바라만 보았던 창을 통해 지금은 공원을 내려다보고 있다. 고개를 젖히고 바라보았던 평화로운 새들의 날갯짓도 지금은 내려다보고 있다. 참새도 포르르 날아와 베란다 화분대에서 까불까불 잠깐 눈 맞춰 주고 간다.

소박한 꿈들 마음에 담으면 길은 열리는 것일까? 기도드리면 거리에서도 천사를 만나는 것일까? 긍정의 마음은 긍정을 부르는 것일까? 되도록 기쁜 마음으로 나를 보려 하고 세상을 보려 한다. ‘언젠가는 이뤄지겠지.’ 꿈은 그리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임수향(데레사) 시인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20-01-15

관련뉴스

말씀사탕2024. 3. 29

히브 1장 9절
당신께서 정의를 사랑하시고 불의를 미워하시기에 하느님께서, 당신의 하느님께서 기쁨의 기름을 당신 동료들이 아니라 당신께 부어 주셨습니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