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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2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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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편지] 어쩌다 피정 / 정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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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세밑을 병원에서 보냈다. 보호자로서가 아닌, 꼼짝없는 환자 노릇이었다. 지지난해에는 살아있는 나날이 더 고통스러운 투병 끝에 하늘로 돌아간 친언니를 겪었고, 한 달여 전에는 혈액투석으로 오랜 기간 고생해온 지인의 장기이식 수술이 있었기에, 나의 근황은 내세울 것이 못 됐다. 화근이 된 부위를 제거해야 하지만 신장과 췌장을 동시에 이식한 지인처럼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대수술도 아닌지라, 책 두어 권 들고 들어가 조용히 쉬다 나오면 되는 거라 여겼다. 여행 가방을 꾸리듯 읽을 책을 고르고 텀블러와 티백 홍차도 챙겨서 홀홀히 병원으로 향했다. 독립해나간 아들과는 병원 로비에서 만나기로 했다. 내 눈에는 아직도 물가에 내놓은 피보호자 각인데, 무릇 이날을 기해 수술동의서에 사인을 해야 하는 보호자로 포지션이 바뀌었다. 빼도 박도 못할 세대교체의 타이밍이었다.

수술실에 이르자 ‘웃픈’ 장면 하나가 떠올랐다. 악성 편도선염과 림프절 문제로 생애 첫 외과적 수술을 했을 때다. 17세 소녀에게 흰 벽에 둘러싸인 병상이란 멜랑콜리와 센티멘털이 결합한 공간이다. 휠체어에 실려 수술준비실로 이동할 때조차도 ‘창백한 문학소녀’ 콘셉트를 포기할 수 없었던 나는 톨스토이의 「부활」을 무릎에 올려놓았다. 마취주사를 맞고도 계속 책을 읽(는 체하)자 간호사가 당황스런 얼굴을 했다. 그 대가로 주사 한 대를 더 맞았다. 그래도 말짱했다. 결국 나는 의료진의 이름표를 또박또박 읽을 수 있는 명료한 상태로 수술 의자에 앉혀졌다. 특이체질이라는 황망함 속에 무통증 국소마취로 수술에 돌입했다. 내 앞에는 집도의 말고도 네 명의 청년이 가스펠 중창단처럼 늘어서 있었다. 그날 나는 수려한 수련의들과 함께 집도의의 해부학적 설명을 낱낱이 들어야 했으며, 목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메스의 예리한 절삭력과 수술용 가위의 설겅거리는 작동감을 고스란히 지각해야 했다. 기구에 의해 최대한 벌려진 입 가장자리로는 굵은 침이 질질 흘렀다. 해쓱한 소녀 이미지를 구현해보고 싶었던 로망은 스릴러와 누아르로 버무린 코미디로 산산조각 났다.

다행히도, 이후 몇 번의 수술과 제왕절개로 아이를 출산할 때는 마취제가 제 역할을 다해주었다. 이번의 수술에서도 카운트 없이 까무룩 잠들었다. 무서워서가 아니라 추워서 오들오들 떨었던 ‘before’와 회복실 천장이 비대칭적으로 흔들리는 ‘after’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주렁주렁 매달린 튜브들로 부자유해진 신체가 말해줄 뿐, 내게는 완벽히 사라진 시간이었다. 수술후유증인지 약물부작용인지, 시력장애와 두통도 건너뛴 시간의 흔적이었다. 챙겨간 책은 무용지물이 됐다. 활자중독자의 허세는 또 물 건너갔다.

뭐, 나쁘지 않았다. 뜨뜻하든 미지근하든 징글징글하든 ‘웃프든’, 이제는 모든 일에는 다 뜻이 있다고 받아들일 줄 안다. 눈을 닫으니 해야 할 일이 선명해졌다. 나는 나의 생을 오르내렸다. 고맙고 미안하고 부끄럽고 안타까운 이름들, 얼굴들, 순간들이 무궤도로 지나갔다. 잘살았다기보다 그럼에도 괜찮았다. 내 의식이 잠시 정지했던, 한 생의 길이에 대면 쪽잠 한 토막에 불과한 그 겨를에도, 언제나처럼, 보이지 않는 하얀 손이 존재했다는 느꺼움이 비로소 찾아왔다. 그리고 내 영혼의 집인 나의 몸을 겸허히 수용하기에 최적인 장소, 묵은해와 이별하고 새해를 받아 안기에 최상인 상태에 놓여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책을 읽을 시간도 아직 충분히 남았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정길연(베트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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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0-01-28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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