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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단상] 하느님과 관계 맺기(안현모, 리디아, 동시통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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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휴대전화기를 새로 바꿨습니다. 원래 쓰던 전화기와 작별하기 전, 필요한 데이터를 옮기기 위해 마지막으로 메신저 앱을 쭉 훑어보았죠. 그동안 지인들과 주고받은 수많은 대화가 그대로 쌓여 있었습니다. 사용한 지 2년 반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대화창이 그야말로 끝이 보이지 않게 펼쳐졌습니다. 그중에는 지금도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과의 소소하고 친밀한 수다도 있었고, 비록 현재는 뜸하지만 이름만으로도 반가운 인물들과의 고맙고 소중한 대화도 있었습니다. 그 목록을 내려보는 것만으로도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며, 그 사이 저에게 참 많은 일이 있었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웠던 건, 스스로 기억조차 나지 않는 이야기들도 참 많았다는 사실입니다. 얼굴도 가물가물한 취재원과의 형식적인 안부 메시지라든가, 예의상 대충 대꾸하고 넘어간 시답잖은 농담이라든가, 단순 업무 목적으로 챙겼던 각종 교신은 분명 눈앞에 존재하는데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낯설었습니다. 그러자 여러 가지 묘한 깨달음이 올라왔습니다. 우선, 하루 이틀 얘긴 아니지만 ‘나의 기억력이 이렇게 하찮구나’ 하는 자괴감이 먼저 밀려왔고, 어차피 이렇게 인간의 뇌용량이 한정적인 거라면, 기록이 아닌 기억으로 남을 관계에 보다 집중해야겠다는 나름의 각오도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질문도 피어났습니다. ‘그렇다면 입장을 바꿔서 나는 이들에게 어떤 데이터일까?’

일 년 동안 전혀 소식도 없다가 해가 바뀔 때만 틀에 박힌 신년 인사를 건넨다든가, 생일이나 명절에만 불쑥 말을 거는 사람은 아닌지. 바쁘다는 핑계로 짧은 문자나 그림으로만 답변을 대신하는 사람은 아닌지. 더욱 최악인 것은, 혹시나 꼭 내가 필요할 때만 찾는 사람은 아닌지 돌아보게 됐습니다. 그리고 저의 전화번호부에 0번으로 저장돼 있는 하느님과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매일 수십억 인구와 소통하며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서버를 관장하시는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저는 과연 어떤 데이터일까요?

어쩌다 한번 특별한 날에만 접속하는 계정일 수도 있고, 아니면 아예 한동안 접속이 끊긴 휴면계정일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정 반대로, 하루도 빠짐없이 ‘띠링 띠링’ 시끄럽게 알림 소리를 울려 대는 단골 계정이지만, 그저 일방적인 민원으로만 가득한 주문 전용 계정인지도 모릅니다. 물론 무엇이 됐든, 하느님께선 언제든 와이파이를 빵빵하게 열어놓고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시겠지만, 단순한 응답에서 그치지 않고 친히 수화기를 들어 먼저 전화를 걸고 싶어 하실 상대는 누굴까요? 아마도 일단은 가까이에 있는 사람, 그리고 평소 내 얘기만 하기보다는 상대의 얘기를 할 수 있게끔 공간을 주고 귀담아듣는 사람에게 입을 여실 것 같습니다.

새 전화기에서도 하느님은 여전히 저의 즐겨찾기 맨 첫 줄에 계십니다. 더 자주 연락드리고, 더 기쁘게 해드리려 노력할 겁니다.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음성에 안테나를 켜고 귀를 쫑긋 기울이려 합니다. 양방향 소통이 될 수 있도록, 하느님의 전화가 걸려올 수 있도록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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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0-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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