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사람과사회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현장 돋보기]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장현민 시몬(보도제작부 기자)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오랜만에 집 근처 떡볶이집을 찾았다. 어렸을 때부터 매콤한 맛이 생각날 때면 종종 찾곤 했던 ‘동네 맛집’이다. 이날은 떡볶이 때문에 찾은 건 아니었다. 사실 떡볶이집은 언제 없어질지 모른다. 지역 재개발 공사로 주변 건물은 모두 헐려 나갔다. 떡볶이집을 포함한 두세 채 건물만 텅 빈 공터 사이에 덩그러니 남아있다. 건물 양옆에 설치된 비계에는 ‘생존권 보장’이라 적힌 플래카드와 ‘자발적 이주’를 요청하는 플래카드가 함께 펄럭이고 있다. 건물들이 사라진 자리에는 아파트 단지가 들어설 예정이다.

취재 차 찾은 김포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김포성당은 수십 년간 유지해온 모습이 변형될 위기에 처해있다. 성당 주변에 사는 수백 가구의 사람들은 지금 사는 집을 떠나야 한다. 곧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지만, 지금 사는 사람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보상금은 수천만 원 수준이지만, 재개발 아파트 분양가는 수억을 오르내린다.

철학자 존 롤스는 정의로운 사회를 구별하는 원칙 가운데 하나로 차등의 원칙, 즉 최소의 수혜자에게 최대의 이익이 주는 것을 제시했다. 롤스는 “이 원칙이 지켜질 경우에만 사회경제적 평등이 인정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나라 각지에서 이뤄지고 있는 재개발에서 ‘최소 수혜자’에 대한 배려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살길을 찾도록 도와달라는 목소리는 보상금을 더 타내려는 꼼수로 매도되기도 한다. 더 많은 이익을 챙기기 위해 지역 주민들끼리 서로 헐뜯고 싸우는 일도 있다. 그 사이 진짜 절박한 목소리는 묻혀 사라진다.

떡볶이를 먹고 가게 문을 나오는 순간 등 뒤로 사장님의 인사가 들린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우연한 일치일까. 김포를 찾았을 때 본당 신자들이 했던 인사도 “와주셔서 감사합니다”였다. 평범한 인사였지만 나도 모르게 코끝이 시큰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0-03-04

관련뉴스

말씀사탕2024. 4. 20

집회 7장 35절
병자 방문을 주저하지 마라. 그런 행위로 말미암아 사랑을 받으리라.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