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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화해·일치] 새로운 평화를 시작하는 ‘원년’ / 강주석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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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공간에서 좌익과 우익이 격렬하게 대립했던 소용돌이 속에서 한국천주교회는 강력한 반공주의를 선택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 전선이 강화되는 가운데 세계 곳곳에서 가톨릭교회는 공산주의 세력과 충돌하고 있었고, 한국천주교회도 평화를 위한 역할을 고민하기 어려운 갈등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우선 38선 이북 지역에서는 1946년 봄 ‘북조선 기독교 연맹’이 결성되면서, 가톨릭교회와 북한 정권 사이에 갈등이 표면화되기 시작한다. 개신교의 경우에는 적지 않은 수가 ‘북조선 기독교 연맹’에 참여한 데 반해 가톨릭 측에서는 이 연맹에 전혀 참여하지 않았다. 북조선 인민위원회 서기장 강양욱이 여러 번 평양교구 홍용호 주교를 방문해서 천주교도 이 연맹에 가입해 줄 것을 요청했으나 홍 주교는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한다. 더 나아가서 홍 주교는 평양교구 모든 신자들에게 연맹 가입을 금지시켰는데, “무신론자에게 일시적 또는 외면적으로 협력하는 것은 가톨릭 교리에 어긋나는 것이요, 신앙을 배반하는 것”이라면서 반공주의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는 1949년 7월에 발표된 교황청의 입장, 그러니까 ‘가톨릭 신자는 공산당 당원이 될 수 없고, 공산주의를 옹호하는 어떤 글을 쓰거나 출간해서는 안 된다’고 선언한 교황청의 「공산주의 반대에 대한 교령」(Decree against Communism)보다 앞선 것이었다.

북한 정권이 공식적으로 수립되고 교회 재산들에 대해서도 국유화 조치들이 진행되면서 박해와 반발의 악순환은 가속화됐으며, 결국 한국전쟁 발발과 함께 북한지역에는 천주교 신부가 한 명도 남지 않게 된다. 이는 타 종파의 경우와 비교해도 예외적인 상황으로 볼 수 있는데, 따라서 분단 과정에서 천주교회가 타 종교나 타 종파보다 더 강하게 반공을 실천했기 때문에 더 심한 박해를 받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한국천주교회는 한국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이면서 남북 분단이라는 적대적 대립의 중심에 있었던 것이다.

지난해 6월 25일, 한국천주교회 전체가 한마음으로 봉헌한 ‘한반도 평화기원미사’에서 주교회의 의장 김희중 대주교는 2020년이 “하느님의 크신 자비로 분단의 아픔에서 벗어나 종전협정과 평화협정을 체결해 새로운 일치와 평화의 시대를 여는 은총의 원년이 되길 기도하자”고 말씀하셨다. 교회뿐 아니라 우리 민족 모두에게 여전히 고통을 주고 있는 비극은 아직 공식적으로 ‘종전’되지 않았고, 전쟁을 치른 당사국들이 적대적 대결국면을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67년째 휴전이라는 이 부조리한 현실을 ‘분열의 악’으로 인식하는 한국천주교회는 현재의 분단구조가 해체되고 한반도가 군사적 대결에서 벗어나 ‘평화체제’로 이행될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 한국전쟁 발발 70년을 맞이하는 올해, 평화의 사명을 지닌 우리 교회의 더 간절한 노력을 기대해 본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강주석 신부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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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0-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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