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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단상] 음량은 줄이고 화질은 선명하게(안현모, 리디아, 방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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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학교를 나왔다고 같은 지식이 있는 게 아니듯, 같은 종교를 믿는다고 교리에 대한 이해 수준이 다 똑같은 건 아닐 겁니다. 사실 저의 경우도,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야 세례를 받은 데다, 신앙 공부는 늘 다른 공부에 뒷전으로 밀렸던 탓에 종교적 소양은 부끄러울 정도로 낮습니다. 하지만 마치 글자를 모르는 아이도 그림은 그릴 수 있듯, 저에게는 가톨릭 정신하면 그려지는 얼굴이 있습니다. 어떠한 신부님도 수녀님도 알기 전, 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다녔던 학원의 은천성 샤를르 선생님입니다.

어쩌면 저의 많은 부분을 빚졌다고 생각해서 더 떠오르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학습적인 측면에서도, 우리나라 1세대 동시통역사로서 카리스마 넘쳤던 선생님의 가르침은 저에게 여러모로 지대한 자양분이 되었으니까요. 그렇지만 이렇게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도 아직 수업이 끝나지 않은 것처럼 저에게 계속해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건 선생님의 생활적인 측면입니다. 강남의 인기 강사였는데도 불구하고 청빈하고 소박한 삶을 자처하며 늘 가난한 자들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사셨기 때문입니다. 어느 정도였느냐면, 실제 사제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가정도 없이 교실에서 숙식을 해결하셨고, 대체로 외식이 부담되는 학생들을 위해 크지 않은 학원 안에 도시락 식사 공간을 따로 배정해 두신 건 물론, 음식은 절대 남기지 못하게 하신 걸로도 유명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저도 선생님이랑 밥 한 끼 사 먹어본 적이 없습니다. 거의 10년 전쯤 직장인이 되어 스승의 날에 찾아뵀을 때, 책상에 앉아 도시락을 함께한 게 전부였으니 말이죠.

그러니 어찌 보면, 별다른 특별한 추억도 없는 게 맞습니다. 심지어 선생님이 독실한 천주교인이란 사실도, 그래서 옥상에 자그만 기도실이 있다는 소문도 건너 들었을 뿐, 강의 시간에 종교적인 언급은 일절 하지 않으셨으니까요. 선생님은 선생님이 해야 할 일을 했고, 저는 제가 할 일을 했을 뿐인 거죠. 그런데 저는 왜 얼마 전 그리운 사람을 찾아주는 TV 프로그램의 섭외가 왔을 때도 가장 먼저 선생님을 떠올렸을까요?

물론, 섭외에는 응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그것도 매체를 통해 접한 소식에 따르면 선생님께서는 이제 계획하시던 대로 빈민국 봉사 활동에 매진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지금도, 선생님의 건강을 걱정하며 선생님의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그건 아마도 선생님께서 제게 물려주신 기억이 장황한 설명이 아닌, 삶의 모습 그 자체였기 때문일 겁니다.

훗날 알고 보니, 선생님께서 오래전 프랑스 테제에서 수도자의 꿈을 접고 귀국하며 가슴에 새긴 신조는 ‘각자 있는 자리에서 신앙을 실천하라’였다고 합니다. 선생님은 이 한 문장을 말로 전하는 대신, 몸소 그것의 거울이 되셨던 겁니다. 신기하게도 단 한 마디 전도도 없이 선생님을 따라 신앙인이 된 저도, 앞으로 말이나 글이 아닌, 한 폭의 그림 같은 신앙생활을 해야겠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볼 때, 음소거로 보실 수도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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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0-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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