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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기자 단상] 철창 안에서 온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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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서울 신내동 빈첸시오회를 통해 한 사람의 사형수를 소개받았다. 그는 젊었던 시절 혈기 왕성하고 의가 넘쳐서 친구들과 어울려 동네에서 못된 짓을 일삼던 사람을 폭행하고 사망에 이르게 한 죄목으로 감옥에 들어와 재판을 받고 감형이 되어 무기수로 전환되게 되었다.

올해로 24년째 접어드는데 나와 인연이 되어 의형제를 맺고 후원을 하게 된 지도 벌써 12년이 넘었다. 미약하나마 한 사람을 선한 길로 걷게 안내하고, 또 실망하지 않고 하느님을 믿고 성모님 은총을 입도록 이어주는 역할을 할 수 있었음에 감사 드린다.

그는 성모님께 의지하며 수많은 기다림의 시절과 시련의 시기를 참고 인내하면서 ‘자기만의 작은 수도원’이라 생각하며 매일 기도를 빠짐없이 바치는 세월을 보내고 있다. 빈첸시오회를 통해 교리 공부를 하고 영세를 받게 됐고, 독학으로 중학교와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통과해서 어엿하게 고등교육까지 받게 됐다.

신내동 레지오 쁘레시디움과 일부 교우들이 그의 가석방 청원을 올리고 지속적인 후원을 아끼지 않고 있음에 감사한다. 오늘도 쁘레시디움 협조단원으로서 떼세라 기도를 바치고 있을 이시도로에게 올해는 좋은 일이 생기기를 기도 올린다.



찬미예수님.

어머니 성모님 안에 언제나 고마우신 형님께.

형님, 요즘 코로나19 때문에 우리나라 뿐 아니라 전 세계가 비상이 걸렸다고 하던데 형님과 주변에 계신분들은 괜찮으신지요. 이곳도 그때문에 외부에서 들어오는 행사는 모두 취소되고 미사도 중단이 되었답니다. 형님 그간에도 어머니 성모님 안에 건강들 하시고 평안하시다는 형님의 편지를 기쁘고 반갑게 잘 받아 보았습니다.

아우도 형님과 형수님 두 분께서 염려와 걱정해주시고 또 기도해 주시는 덕분에 변함없이 하느님 말씀에 순종하며 어머니 성모님의 사랑과 은총속에 잘 지내고 있답니다.

아우는 형님의 이런 편지를 읽을 때마다 희망이란 단어들이 떠오르곤 한답니다. 아우는 모든 것을 다 이곳에 묻고 산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생각해보니 아우에게도 큰 희망들이 내재돼있더라고요. 물론 이런 것이 다 두 분의 덕분이지만 말입니다.

형님의 편지를 읽는데 아우도 어린 시절 생각들이 납니다. 어릴 적에 신암리 개울가에 나가서 썰매를 타고 그랬거든요. 눈이 오는 날에 뒷동산에 가서 친구들과 비료포대로 눈썰매를 많이 타고 그랬었지요. 무엇보다 형님께서 설날에 가족들과 찍으신 사진을 보내 주셨는데 아우는 그 사진을 보면서 가슴 한 켠이 뭉클했답니다. 일일이 다 가족들 소개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중략)

항상 고마우신 형님, 어제 이곳에서 소장님 간담회가 있었습니다. 수용자 30명과 소장님을 비롯해 여러 간부들이 참석을 하셔서 약 2시간 정도 여러 건의와 의견들을 주고받았지요. 그런데 소장님께서는 그 동안에 어떤 소장님도 하지못한 일들을 계획하고 계시더라고요. 사형수와 무기수 감형을 장관님께 건의 드리려고 작성하고 있다면서 장기수들에게 희망을 주시더군요. 수용자들과 외부 중국집에서 배달 온 자장면 탕수육 만두를 먹으면서 이런 저런 대화를 하시다 가셨습니다. 소장님께서 젊으셔서 그런지 말이 통하시는 분이더군요. 이제는 무기수들 가석방 취업 기회도 생기고 귀휴(교도소에서 복역중인 사람이 출소하기 직전이나 일정한 사유에 따라 잠시 휴가를 얻어 교도소 밖으로 나오는 것)도 보내줄 거라고, 그렇게만 된다면 어머님 생전에 꼭 한번 뵙고 싶은 마음 뿐입니다.(중략)

그동안 너무도 미안하고 부끄러워서 얘기를 못하고 살았습니다. 아우가 지은 죄는 너무도 크지만 나가서라도 참회하며 살고 싶습니다. 정말 한번은 인간처럼, 사람처럼 살고 싶습니다.

형님 건강 잘 챙기시며 지내십시오. 항상 두 분 은혜에 감사드리며 이만 줄이겠습니다.


-2020년 2월 15일 아우 이시도로 올림


※ 가톨릭신문 명예기자들이 삶과 신앙 속에서 얻은 묵상거리를 독자들과 나눕니다.


조희철(스테파노) 명예기자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20-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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