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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의 눈]예수, 2천 년 전 뉴노멀과 교회의 갈 길 / 김지영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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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고발할 구실을 찾으려고, 그분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시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일어나 가운데에 서라.”하고 이르셨다. 그가 일어나 서자 … 그사람에게, “손을 뻗어라.”하고 말씀하셨다. … 그 손이 다시 성하여졌다. 그들은 골이 잔뜩 나서 예수님을 어떻게 할까 서로 의논하였다.」 (루카 6,7-11)

안식일에는 일을 하면 안 된다. 천하에 없어도 지켜야할 엄연한 모세 율법이 아닌가. 그러나 예수는 안식일이면 여기저기 다니며 병든 사람을 고쳐준다.

누가 율법을 지키지 않은 데 대해 따지면 예수는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이 세상에 전적으로 ‘사람과 사랑’ 중심의 뉴노멀(New Normal), 새로운 표준이 등장하는 시간이었다.

예수는 바리사이들이 마치 진리처럼 떠받드는 금기들을 깨트리기 예사였다. 기존 가치와 관습, 규율들을 보란 듯이 무시한다. “이건 기존 체제를 흔드는 것 아닌가? … ”하는 생각들이 모여 예수를 사형에 이르기까지, 형극의 고난에 빠트린다. 하지만 예수의 뉴노멀은 그 뒤 2천 년 간 인류사회에 빛이 되었다.

세상은 큰 힘이 왔다 갈 때마다 그 영향으로 변화를 겪는다. 또 큰 힘이 지나갔다고 해서 온전하게 예전으로 되돌아가는 법은 없었다. 십자군 전쟁, 14세기 페스트 전염, 1차·2차 세계대전 등, 언제나 그러했다. 광대무변한 이 우주에서 시간의 배를 타고 가는 우리는 늘 그렇게 달라져간다. 무상(無常)이라, 늘 그대로 있는 것은 없다.

바로 이 말씀이다.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루카 21,33)

그러므로 그 분의 진리 외에는 이 세상 무엇이라도 변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받아들이는 게 타당할 것이다. 사람들에게는 흔히 진리가 아닌 데도 진리처럼 오인하고 집착하는 게 있다. 관습과 습성, 규칙, 프로토콜, 절차 같은 것들이다. 때가 되어서, 큰 힘이 쓸고 지나간 뒤라서 자연스럽게 변하고 있는데도 이런 것들이 예전 그대로 온존하기를 간절하게 바란다.

진리의 말씀은 이행하지 않으면서 관습과 프로토콜 등은 철저하게 지키는 이들도 있다. ‘열심한 신자’로 인식되기도 하는 이들은, 관습과 프로토콜 등 형식들이 변화하는 걸 용납하지 않는 공통점이 있다. 기존 관습과 프로토콜 등 형식이 변하거나 무너지면 체제가 무너진다는 느낌을 갖고 있다. 안식일의 금기가 깨지는 걸 체제 위기로 여긴 예수 시대의 바리새인처럼.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우리 교회도 일찍이 겪지 못한 일들을 겪었다. 이제 서서히 코로나 사태도 진정되고 교회의 여러 일들도 정상화할 것이다. 그러나 모든 분야가 그렇듯이 온전하게 예전 그대로 복귀하지는 못할 것이다. 코로나 사태 속에서 임시 비상조처로 받아들였던 많은 삶의 방식들이 일상으로 그대로 정착하리라 본다.

팬데믹 이후 대전환기, 세계는 새 시대 패러다임의 등장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제 교회는 묵혀놓았던 혁신과제들을 정리하고 가는 게 자연스럽다. 그것이 시대의 징표에 걸맞는 일이다. 과제들이라고 한다면, 지난 2000년 대희년 시노드에서 제기한 것이 많았지만 지난 20년 동안 고스란히 먼지를 쓰고 묵혀 있다.

왜일까? 아무도 말해주는 사람이 없고 물어도 대답이 없지만 내 느낌은 있다. 자칫 교회 기존 체제가 흔들리지 않을까 하는, 근거 없는 걱정 때문이 아닐까.

우선, 팔을 걷고 강고하기로 소문난 한국교회의 성직중심주의부터 들여다보면 좋겠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틈만 나면 성직주의의 악폐를 지적해왔다. “성직자는 우월하고 백성들하고는 다르다고 여기는 게 성직주의에 들어있는 정신이며 이것이야말로 교회의 악이다” 성직주의는 오늘날 우리 교회도 공식적으로 그토록 강조하는 ‘하느님의 백성’ ‘공동합의성’ 이론을 정면으로 위반한다.

그밖에 시대의 징표를 도저히 못 따라가는 남존여비 풍조도 획기적인 쇄신 전기를 만들어야 한다. 날로 심해지는 세속주의, 그리고 교회 관료주의에 대해서도 다시 머리를 맞대고 숙의해야 하겠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김지영 위원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초빙교수)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20-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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