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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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단상] 처음부터 다시(이수정, 데레사, 경기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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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많은 일을 겪고 보니 인간이란 기껏 미세먼지도, 바이러스도 이겨내지 못하는 약한 존재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도 매일매일 서로 조금 더 갖겠다고 전력을 다해 싸우기만 하던 나날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세상을 반으로 쪼개어 네 편 내 편 아귀다툼으로 날 새는 줄 몰랐다고 하면 너무 지나친 표현일까요?

그런데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출현으로 이제는 평범했던 일상마저도 언제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오프라인에서 해소되던 어리석은 욕망들이 온라인 세상에서 폭발하여 천진난만한 아이들을 끔찍한 성범죄의 희생양으로 삼은 사건이 드러났습니다. 법과 질서도 없는 무법천지의 원리가 어떤 것이었는지 온 국민이 사이버공간 속 n번 방을 통해 처절하게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사가 이 지경인 데 비하여 꽃나무는 어찌나 계절을 올바르게 아는 것인지 봄이 되자마자 온천지가 꽃밭이 되었습니다. 자연은 약속을 어기지 않아서 정직할 뿐 아니라 숭고한 느낌마저도 듭니다. 다만 이렇게 아름다운 계절에도 아이들에게 마스크 없이 마음껏 뛰놀 수 없게 만든 어른인 것이 죄스럽습니다. 바이러스로 가득 찬 오프라인 세상과 아이들을 범죄로 유인하는 사이버공간을 물려주기 위해 살았던 것은 아니었는데, 왜 이런 세상이 된 것인지 한탄스럽습니다.

누구의 책임일까요? 지난 20년 동안 환경오염이 심해지고 아동 성범죄가 악화일로임을 알았던 저 역시 책임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않습니다. 좀 더 많은 사람을 만나 설득하고 보다 적극적으로 세상을 바꾸려 하지 않았던 것은 저의 나태함 때문이라 자책해봅니다. 이제는 평화롭고 안전하던 지난날로 돌아가기가 쉽지 않을 것이기에 ‘환란’이라고 얘기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진심으로 잘못했었음을 자인하게 됩니다. 아이들은 물론이고 작은 꽃송이 잎새 하나까지 자유롭게 숨 쉬며 살아가지 못하게 만든 저 자신의 과실을 하나씩 깨닫게 됩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걷기보다는 자동차를 이용하고, 조금이라도 쌀쌀하면 보일러를 가동하는 등 환경을 돌보지 못한 점, 또 청소년 성매매 문제가 이렇게 심각하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제대로 고발하지 못한 저의 잘못을 고백합니다.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코로나19의 위기를 힘겹게 이겨낸 한국인들의 지혜를 끌어모아 오프라인과 온라인 공간을 좀 더 안전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시어 우리에게 맡겨주신 자연환경을 위해 당장 탄소 배출량을 줄이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특히 아이들이 안전하게 세상을 살 수 있도록 온갖 형태의 폭력을 없애고, 다양한 입법 활동에도 동참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의 미래 세대에게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 것인지 다 같이 둘러앉아 세세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싶습니다. 모두의 작은 실천이 세상의 추락 속도를 조금이나마 늦출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합니다. 그분께서 ‘보시니, 참 좋았다’라고 하셨던 세상을 만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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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0-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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