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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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진단] 뉴 노멀, 이분법적 사고를 극복하자(최영일, 빈첸시오, 공공소통전략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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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이분법의 시대이다. 신종 바이러스는 인간의 세계를 둘로 쪼개었다. 음성과 양성. 감염되지 않은 자와 감염된 자. 새로운 경계와 구분이 우리 사회를, 또 지구촌을 조각조각 나누었을 뿐 아니라 그 금을 밟지 않기 위해 조심조심 움직이거나 아예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인간의 역사는 이분법의 역사라 불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먼저 내 생각과 같은 집단과 다른 집단을 나누어 포용하거나 배타하는 흑백의 논리가 있다. 역사적으로 인간사회의 허다한 통합과 갈등, 전쟁과 침략, 동맹과 협력의 전략을 단순 정리하면 결국 나의 편을 포섭하고 나의 적을 몰아내는 배제, 두 가지로 수렴한다. 그리고 인간의 존재를 두 영역으로 나누는 영혼과 육체, 더 확장하여 정신과 물질로 구분해온 두 영역의 심화 과정이 있다. 영혼과 정신의 영역에 대한 연구는 종교, 철학, 인문학을 거쳐 심리학과 정신의학까지 퍼져 있다. 육체에 대한 연구는 때로는 강하지만 때로는 연약한 인간의 생명이 현재 가장 의존하는 의학부터 사물의 세계 전반을 탐구하는 물리학, 화학, 생물학, 지구환경과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화되었다.

그리고 20세기 말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우리 세계를 강타한 이분법은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분화인데 우리는 이를 흔히 오프라인과 온라인으로 부르고 있다. 또는 물질의 입자를 의미하는 원자, 아톰의 세계와 이진법으로 정보의 단위를 나타내는 비트의 세계로 구분하기도 한다. 실제의 세계는 오프라인이지만 전자정보통신망에 접속하여 가상세계에 빠져 있으면 내 생각은 온라인 상태인 경우도 일상다반사가 되었다. 몸은 사무실에 있지만, 마음은 주식시장에 가 있거나 몸은 카페에 앉아 있는데 손가락은 열심히 마트에서 쇼핑을 하고 있는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요즘 흔히 강조하는 창의력은 이러한 이분법의 경계를 뛰어넘는 융복합에서 나온다. 우리는 이미 다중성, 다층성, 혼종성의 시공간에 살고 있지만, 사고방식만은 인류가 더 긴 시간을 점유해온 물질, 오프라인, 아톰의 세계에 익숙했던 것이 사실이다.

신종 바이러스는 물리적 ‘접촉’을 감염의 위험으로 두려워하게 했고, 이제 온라인 개학, 인터넷 교육, 화상회의, 재택근무, 원격 업무는 급속히 일상이 되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증 사태가 종식되더라도 이전의 라이프 스타일, 사회적 관습으로 돌아가기 힘들 것이라는 판단에 새로운 질서, ‘뉴 노멀’이 모색되고 있다.

20세기 말부터 전자 네트워크가 등장하고, 인터넷과 온라인, 사이버 스페이스가 유행하자 2006년 이어령 선생은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조화를 강조한 ‘디지로그’론을 내놓았다. 얇은 책에 담긴 시론적 수준의 주장이었지만 큰 영감이 있었다. 한국인의 비빔밥 문화가 융복합에 강하다는 주장은 최근 방역 대응의 선진화에서도 나타나지 않았던가.

그로부터 10여 년, 우리는 이제 실제의 삶에 디지로그를 구현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하지만 이 또한 사람 사는 법에 다름 아니다. 새로움을 어렵게 고민하지 말자. 온라인의 초심도 결국은 사람의 연결이다. 영국의 팀 버너스리 경이 월드와이드웹을 창시할 때 철학은 개방, 공유, 참여였다.

컨택(contact)할 수 없다면 커넥트(connect)하라. 접촉할 수 없으면 접속하라. 관계를 유지할 ‘망’이 존재하는 한 우리의 공동체는 작동할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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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0-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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