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방 취재를 갔을 때 일이다. 오랜 세월 성착취 피해 여성들과 함께 생활해 온 수도자들을 만났다. 우리 사회의 성매매 문화가 얼마나 일상 속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지, 디지털을 세계에서 벌어지는 새로운 형태의 범죄는 또 얼마나 잔인한지, 어디서부터 어떻게 뜯어고쳐 갈 수 있을지…. 갑갑하고 슬픈 이야기를 나눴다. 무거운 마음으로 취재 수첩을 접고 일어나려는 순간.
“다시 입원했다고 하네요.”
두 수녀가 함께 알고 지내는 한 여성의 근황 이야기가 나왔다. 내 또래인 듯했다. 어린 시절 성폭행을 당했고 20여 년간 트라우마에 시달렸으며 몇 번이나 자살 시도를 했는데 이번에 또 스스로를 해치다 병원에 입원하게 됐다고 했다. 수십 년 동안 그의 마음을 치유해 주려 했지만 나아지는 듯하다가도 또 이렇게 무너지길 반복한다고 했다.
“죽음보다 더한 시간을 걷는 거예요. 그런데 가해자는 그걸 몰라요. 같이 즐겼다 생각하는 경우도 많고 돈 주면 된다고 생각하고….”
저 가해자는 얼마나 처벌을 받았을까. 정확한 답은 찾지 못했지만, 피해자가 겪은 고통의 시간보다는 분명 짧았을 것이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지난해 아동ㆍ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 신상정보 등록대상자 가운데 절반은 집행유예를 받았다. 최종심 평균 형량은 강간이 5년 2개월, 강제 추행이 2년 7개월로 비교적 높았고(?), 불법 카메라나 성 매수는 1년 안팎에 불과했다.
n번방 기사에 “보이지 않는 비호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라고 썼다. n번방은 갑자기 툭 튀어나온 사건이 아니다. 솜방망이 처벌과 왜곡된 성 문화를 토양 삼아 쑥쑥 성장해 온 것이다.
최근 ‘아동ㆍ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아청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앞으로 어떻게 보이지 않은 비호 세력들을 없애나갈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