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8일
사람과사회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주말 편지] 그래도, 그래도 꾸짖지 않으시니 / 장성자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니는 어느 학교 가고 싶노?”

중학교 3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학생들을 앞에 세우고 물었다. 선생님의 손엔 고등학교 배정표가 들려 있었다. 이미 배정된 학교와 가고 싶은 학교의 이름이 같은 아이도 있고 다른 아이도 있었다. 나도 질문을 받고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그래, 니는 그 학교 가라.”

나는 가톨릭 성녀의 이름을 딴 학교에 배정되었다. 단지 학교의 이름이 예뻐서 말해 본 건데, 우연은 인연이 되고 운명이 되어 내게 다가왔다.

학교 들어가는 입구에 성당이 있었다. 가끔 새벽 등굣길에 성당 문을 빼꼼히 열어 안을 들여다보곤 했다. 신부님과 미사포를 쓴 여자들과 남자들이 미사를 드리고 있었다. 교회도 한 번 가 본 적이 없는 나는 그 광경이 낯설고 신기했다.

종교 수업 시간이 있어서 학생 전체가 미사를 드릴 때도 있었다. 이미 천주교 신자인 친구들은 미사포를 썼는데 그 미사포가 갖고 싶었다. 오월이면 행해졌던 성모의 밤 행사도 좋았다. 촛불을 들고 좁은 운동장을 돌며 성모를 기억하는 행사도 아름다웠지만,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서 수다를 떠는 건 더 좋았다. 그렇게 나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세례를 받았다.

제사보다 제삿밥에 관심이 많았듯이, 하느님 말씀 보다 그 주변의 재미에 혹해서 가톨릭에 발을 담근 것이었다. 그래도 하느님은 꾸짖지 않았다. 꾸짖지 않고 더 큰 인연으로 나를 당겼다. 직장 내 가톨릭 신자들의 모임에서 신심이 큰 사람들을 만나고 견진성사도 받았다. 지금의 남편도 만났는데 가톨릭 신자였다.

하지만 성당에 간 날 보다 안 간 날이 더 많았다. 아예 외면해 버렸다. 집이 경매에 넘어가서 전세금도 못 받고 동동거리던 시절이 있었다. 하느님을 찾으며 기도했다.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교회를 찾았다. 전세금을 받게 해달라고 소리 내 기도했다. 절에도 가서 두 손을 모으고 기도했다. 종교를 물으면 여기저기 다 간다고 말해 버리곤 했다.

그래도 하느님은 꾸짖지 않았다. 아니, 나에게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당연했다. 호기심에 세례받고 떠밀려 견진 받는 나 같은 존재에게 무슨 관심이 있을까. 성당 문턱에 부딪혔다 바람에 날려가는 낙엽 같은 존재가 바로 나였다. 그렇게 가톨릭과 나의 인연은 끝이 났었다.

어느 날, 군대에 간 아들에게서 편지가 왔다.

‘……. 저 종교가 생겼어요. 천주교. 세례도 받았어요. ‘바오로.’ 바오로는 가장 늦게 예수님의 부름을 받았지만 가장 활기차고 놀라운 능력을 행했다고 해요. 나도 그처럼 조금 늦은 시작이지만 가장 활기차고 특별해지길 바라면서…….’

생각지도 못한 아들의 편지를 읽으며 부끄러움과 감사함에 얼굴이 뜨거웠다. 가톨릭과 나의 인연은 끝난 게 아니었다. 하느님은 여전히 보잘것없는 나를 보고 있었고, 감싸며 이끌고 있었다. 신심이 깊은 아동 문학가들과의 만남 또한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이루어졌다.

고 최영식(마티아) 신부님이 생전에 축성을 해주신 묵주반지로 기도를 올린다.

“그래도, 그래도 꾸짖지 않고 품에 안아주셔서 고맙습니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장성자(클라라) 동화 작가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20-05-06

관련뉴스

말씀사탕2024. 3. 28

시편 112장 3절
부와 재물이 그의 집에 있고 그의 의로움은 길이 존속하리라.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