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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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간 한국 어르신들에게 사랑 나눠준 필리핀 선교사

한국 선교 생활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가는 성골롬반외방선교회 평신도 선교사 루다 이그발릭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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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제 고향 필리핀과 너무 달랐어요. 공항부터 근사했어요. 거리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별로 없어 보였죠. 이렇게 발전된 나라에 과연 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어요. 그런데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저를 기다리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 있었어요. 바로 외로운 어르신들이었죠.”

6년간의 한국 선교에 마침표를 찍고 고국으로 돌아가는 성골롬반외방선교회 평신도 선교사 루다 이그발릭(47, 사진)씨. 그는 “어렵고 소외된 어르신들을 방문한 게 가장 기억에 남는 선교 활동”이라고 말했다.

자녀와 친척에게 버림받고 홀로 외롭게 사는 노인들의 모습은 그에게 적잖은 충격이었다. 대가족 문화인 필리핀에서는 홀몸노인이란 개념 자체가 생소했다. 아무리 가난한 집이라도 노인을 봉양하는 게 지극히 당연한 도리였다. 놀랍고 측은한 마음에 그는 노인들에게 살갑게 다가갔다. 외로웠던 노인들은 말도 잘 안 통하는 그에게 금세 마음의 문을 열었다. “루다, 언제 또 와요? 맛있는 것 준비해 놓을게.” “루다, 엄마가 너무 보고 싶으면 놀러 와요.” 그렇게 그는 의정부교구 능곡본당과 봉일천본당에서 많은 노인의 벗이 돼줬다.

특히 안나 할머니와 보낸 시간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처음 만난 할머니는 머리는 온통 하얗게 셌고,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가냘프기 그지없는 모습이었다. 딸은 할머니와 연을 끊은 지 오래였고, 아들은 사업하느라 대만에 나가 있었다. 종일 홀로 방에서 지내던 할머니에게 이그발릭씨는 오랜만에 찾아온 귀한 손님이었다.

할머니는 폐가 굳어가는 병으로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도 즐겁게 이야기꽃을 피웠다. “시간 날 때마다 자주 와 달라”는 간청은 덤이다. 안나 할머니는 이그발릭씨가 올 때마다 늘 어딘가를 함께 가달라고 부탁했다. “루다, 우리 마트 가요.” “루다, 같이 산책하러 가요.” 어느 여름날, 부탁하는 할머니 목소리가 평소와 달랐다. “루다, 병원에 같이 가줄 수 있어요?” 한국말이 서툰 그에게 의사가 하는 말은 알아듣기 어려웠다. 다만 무거운 공기와 할머니의 어두운 표정으로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안나 할머니는 일산의 한 병원에 입원했다. 추석 직전 병실에서 만나 두 손을 꼭 맞잡은 게 둘의 마지막 순간이었다. 할머니의 장례 미사가 끝난 뒤 한 남자가 눈물을 흘리며 다가왔다. 냅다 이그발릭씨를 껴안은 그가 울먹이며 말했다. “사랑합니다. 우리 엄마에게 잘 해줘서 정말 감사해요.” 어쩌면 지금 나를 안고 있는 사람은 아들의 몸을 빌린 할머니일지도 모르겠구나. 그때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할머니와 저는 피가 이어져 있지는 않아요. 하지만 하느님 사랑 안에서 우리는 가족이에요. 선교사에게 중요한 것은 언어가 아녜요. 바로 사랑이에요. 사랑이 없으면 선교할 수 없어요.”

이그발릭씨의 고향 필리핀 민다나오 섬에는 아직도 열악한 환경에서 부족 단위로 사는 이들이 많다. 그는 앞으로 이곳 어린이들을 위한 교육 선교를 펼칠 계획이다. 35살에 평신도 선교사의 성소를 발견하기 전까지 그는 초등학교 교사로 14년 동안 일했다.

“가장 약한 사람과 함께 하는 것. 이게 바로 선교사의 삶이에요. 물론 편하지는 않아요. 어렵고 힘든 점도 많아요. 그래도 참 행복하고 의미 있는 삶이죠. 저를 선교사로 부르신 하느님과 저를 가족으로 받아준 성골롬반외방선교회와 한국 교회에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학주 기자 goldenmouth@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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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0-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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