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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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편지] 못질(부제: 성체) / 임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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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째 밤을 새우고
일곱째 낮을 엎드려 빌어도
오직 당신은
동그란 밀떡 하나였습니다.

수렁 속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마다
수없이 당신을 불렀지만
옷자락 스치는 소리 한 번
듣지 못했습니다.

일곱 날 내내
당신 안에 제가 있을 거라고
거듭거듭 확인 드렸지만
늘 혼자인 저는 무엇입니까.

이제
모든 일손 다 놓고
당신의 일부를
제 안에 묻어 두고자
한 발 한 발 다가서면
당신의 두 손 한가운데
우리가 못질하는 소리
역력합니다.


1989년 제44차 서울 세계성체대회가 서울 주교좌명동대성당에서 열렸는데 대회 일주일 정도 남았을 무렵 가톨릭 문인들에게 ‘성체’에 대한 시를 써 달라는 요청이 있었습니다. 당시 데뷔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인이었던 저는 ‘세계성체대회’ 특집으로 묶어 낸다는 전화를 받고 무척 설레었고 벅찼지만 창작의 시간적 여유가 되지 않은 상황에다 늘 부족한 신앙에 대한 죄책감에 과연 깊이 있는 시를 쓸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없었습니다.

불면의 시간으로 날을 새우는 가운데 천주님의 일생을 하나하나 생각하는 틈새로 시 한 편이 떠올랐습니다. “주님, 주님”을 부르짖는 우리들의 허약한 이중성과 가슴 치며 평소에 잘못됨을 통곡하듯 용서를 빌면서도 세상사에 들면 언제나 기도 따로 행동 따로 천사의 얼굴을 하다가 속으로는 악마의 얼굴보다 못한 짐승이 되는 우리들의 삶이 처연하게 의식의 수면위로 올라왔습니다.

이렇게 성체에 대한 시를 쓰면서 주어진 삶의 무게를 견뎌내는 주부의 일상을 핑계로 언제나 깊은 신앙심은 달아나고 속되다 못해 냉담 교우가 되기 일쑤인 저를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시가 소중하고 특별하지만 이 시 ‘성체’는 제 신앙을 돌아보는 거울이 되어 더더욱 소중하고 각별한 작품으로 남아 있습니다. 천주님을 믿는 모든 신앙인이 함께 이 시를 공감하면 좋을 것 같아 이 시를 선택해 띄웁니다.

우리는 하느님께 “제가 죄인입니다. 죄인입니다” 고백하지만 깊은 반성의 마음에서 우러나오기보다는 겉으로만 그렇게 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천주님이 우리 죄를 사해 주시고 보듬어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느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에게 못질을 하여 그분을 돌아가시게 했습니다. 하느님을 못질한 것과 다름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고개 숙여야 할 죄인입니다.

우리는 쉼 없이 기도하고 반성하고 주님의 무한한 사랑과 신앙 속에 깊이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더 나아가 코로나19가 인류를 공포와 공황으로 몰아넣은 지금의 재앙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의 믿음 천주님을 향해 기도드립니다. 약이 없는 질병 코로나19 백신을 하루빨리 개발하여 허약한 인간 세상에 힘을 보태 주십시오. 마음 깊이 천주님 소원합니다.

세계인을 덮친 재앙에 쓰러져 가는 인간들의 허약함을 불쌍히 여기시어 하루빨리 세균에 감염되지 않도록 재난을 거둬 주소서. 그리고 밝은 빛으로 채워 주실 것을 믿겠나이다. 세계인 모두를 사랑의 손길로 어루만지시고 세계 어느 곳 가리지 않고 만연된 어둠의 골짜기 구석구석을 맑게 거둬 주소서. 이 모든 것 우리 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임지현(마틸다) 시인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20-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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