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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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편지] 고정관념의 오류 / 장순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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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토요일이나 주일 늦은 저녁에 봉헌하는 9시 직장인을 위한 미사에 참례하게 된다. 본당 미사 시간을 놓치거나 바쁠 때엔 부득이 9시 미사가 있는 이웃 성당으로 간다. 이 성당은 크고 새로 단장하였으나 시장통이 주변에 있어 다소 산만하고 시끄러운 분위기이지만 미사 시간만큼은 고요한 딴 세상이다.

여름날, 늦은 저녁 미사에는 주로 퇴근이 늦은 직장인들과 성당 주변에 있는 시장통 좌판에서 장사하는 신자들이 많이 온다. 하루 일과를 끝내고 미사 시간에 맞춰 부랴부랴 달려온 듯 앞치마도 채 벗지 못하고 온 아주머니들과 꾀죄죄한 수건을 걸치고 급히 온 듯 맨 파란 플라스틱 슬리퍼를 끌고 온 할머니 몇 분도 눈에 띄었다.

입당송과 동시에 급히 들어온 아주머니에게서 나는 비린내가 금세 주변에 퍼져 냄새가 진동하였다. 사람들은 은근히 불편한 기색을 보이고 옆 사람은 조금씩 몸을 비켜서기도 했다. 옷차림도 여름날이니 걷어 올린 소매에 헐렁한 몸빼 바지, 그리고 뒤이어 급히 들어온 할머니 몇 분과 아저씨도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며 연신 땀을 닦아내고 있었다. 손도 채 씻지 못했는지, 큼큼한 냄새도 옷에 배여 나도 마음이 좀 불편해졌다.

성당에 갈 땐 예수님을 만나러 가는 거니 내게 가장 좋은 옷으로 깨끗하게 단장하고 양말을 신고 단정한 모습으로 가야 한다는 내 고정관념에서 그들은 많이 벗어나 있었다.

그 해 여름 저녁 미사의 강한 인상은 오래 각인되어 있었다. 그리고 오래 그 생각에 머물러 있었다. 그 후, 무심히 일 년이 흘렀다. 그날도 늦은 저녁 미사를 봉헌하는 지난해 그때와 비슷한 분위기에 역시 시장통 좌판에서 일하는 아주머니와 할머니들이 미사 시간에 늦을세라 부랴부랴 서둘러 들어왔다. 그들의 옷차림과 비릿한 냄새와 맨발, 때 절은 수건과 앞치마 이 모든 것이 그대로이지만 그때와는 내 마음이 확연히 달랐다. 이는 오래 붙들려 있던 내 사고에 변화를 가져온 건 미처 깨닫지 못한 고정관념에 매인 나를 발견한 성숙한 눈이 깨달음을 준 것이라 여겨진다.

그들은 고단한 하루 일과를 마치고 파김치 같은 무거운 몸을 데리고서 시간을 쪼개 미사를 드리러 달려오는 모습이 그제서야 그리 어여쁘게 보였다. 하느님 보시기에도 그러하시리라.

겉만 보고 단정 지은 지난날은 내 얕은 생각의 오류였다. 그냥 보기에도 피곤한 모습이 얼른 가서 편히 쉬고 싶었을 텐데 미사에 빠지지 않으려고 달려온 그들에게 미안함과 따뜻한 손길을 나누고 싶어졌다. 시간을 쪼개어 하느님 시간으로 돌려드리는 그들의 신심은 절실하고 진실했으며 여느 화려한 의상으로 미사에 임하는 부인들과 다르지 않은 땀내 나는 아름다운 의복이었으며 미사 시간만큼은 오롯이 하느님과 대면하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예수님은 “솔로몬도 온갖 영화 속에서도 꽃 하나만큼 차려입지 못하였다. 오늘 서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들어갈 던져질 들풀까지 하느님께서 이처럼 입히시거든, 너희야 훨씬 더 잘 입히시지 않겠느냐?”고 하셨으니, 잠시나마 겉으로 드러난 것에 생각이 머문 내가 작게만 느껴졌다.

이 시대는 겉모습에 유난히 민감하여 유행을 좇아가고, 때로는 겉차림이 초라하거나 남루하면 은근히 외면하거나 경시하기도 해, 나도 예외는 아닌 것 같아 고개가 수그러졌다.

드러나 보이는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내면의 아름다움을 볼 줄 아는 안목과 긍정적 인식으로 사람을 대하는 자세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장순금(젬마) 시인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20-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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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는 다정한 영, 그러나 하느님을 모독하는 자는 그 말에 책임을 지게 한다. 하느님께서 그의 속생각을 다 아시고 그의 마음을 샅샅이 들여다보시며 그의 말을 다 듣고 계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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