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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단상] 평범한 풍요로움(윤태영, 토마스, 복음화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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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열정으로 불타던 20대 시절, 예수님을 위해서라면 순교라도 하겠다는 각오로 해외 선교를 꿈꾸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준비한 해외 선교의 첫걸음은 종교의 자유가 없던 한 나라였습니다. 당시 그 나라의 가톨릭교회 신자들은 박해를 피해 숨어서 신앙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저희가 처음 방문했던 곳은 한국인들의 공동체였습니다. 성경을 소유할 수 없는 그 나라에서, 한국어가 더 익숙한 그곳의 어르신 신자분들은 몇 년이 지난 한국의 「매일미사」 책을 성경 대신 사용하고 계셨습니다. 게다가 한국인 사제가 없으니 모국어로 고해성사를 할 수가 없었기에, 저희가 방문하면 한국 신부님께 고해성사를 할 수 있다는 기쁨에, 먼 곳에서부터 며칠을 걸려 오시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오래된 「매일미사」 책, 그마저도 너무나 많이 읽어서 낡아 버린 그 「매일미사」 책을 붙잡고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한국에서는 매주 주보를 보면서 각종 피정과 교육 프로그램 중에 어디가 좋을지 고민하고 있는데, 고작 1000원짜리 「매일미사」 책 몇 권을 가지고 하느님의 말씀을 닳도록 읽고 계신 그분들의 모습을 보니, 그동안 제가 얼마나 부유하고 귀족 같은 신앙생활을 누려왔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때 지도 신부님께서 해주셨던 말씀이 여전히 기억납니다. “우리는 뷔페 신앙이야. 맘대로 맛있는 거 골라 먹을 수 있잖아.”

골라서 먹어야 할 정도로 많은 선물이 눈앞에 있는데도, 더 좋은 게 없는지 아쉬워했습니다. 낡은 「매일미사」 책과 낡은 묵주 하나로도 하느님과 깊이 결속될 수 있는데, 예쁜 묵주가 집에 몇 개인지도 모를 정도로 많고 성경도 여러 번역본으로 다양하게 가지고 있지만, 하느님과의 결속은 뭔가 부족하고 느슨하게 느껴집니다. 선교를 떠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 나눌 수 있는 모든 것을 나누고 오겠다는 큰마음을 품고 갔는데, 오히려 제가 너무나 많은 것을 받고, 배우고 돌아왔던 눈물과 은총의 여정이었습니다.

이번 코로나로 인해서 그동안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생각했던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되었다고 주변 사람들과 서로 공감하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일상적으로 누리던 사회생활, 경제생활도 더 이상 당연하지 않았고, 문화생활은커녕 간단한 외출조차도 쉽지 않음은 물론 미사도 함께 모여 드리지 못하는 상황을 겪게 될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이번 일로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부유하고 풍요로웠는지를 깨닫고, 동시에 우리가 체험한 굶주림과 목마름을 기억한다면, 이 평범한 풍요로움에 감사할 수밖에 없을 듯합니다.

우리가 겪었던 일상의 굶주림과 영적 빈곤의 체험이, 이제 더 나아가 가난한 이들, 영혼의 결핍을 가진 이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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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0-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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