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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진단] 그래도 가야 할 길(최영일, 빈첸시오, 공공소통전략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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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가 힘들다. 평화로 가는 길이 참 고단하고 힘들다.

2020년, 우리 사회에 이각 파도가 닥쳐왔다. 하나는 자연이 주는 고난 코로나19와의 싸움이고, 다른 하나는 이 나라의 지정학적 특성과 현대 역사가 가져온 군사 외교적 위협이다.

필자는 6월 중순 인천 강화에 있는 한 수도원을 방문할 기회를 얻었다. 너무 가고 싶었던 곳이다. 소모임에서 방역이 좋아지고 있을 때 미리 피정을 잡았던 것인데 마침 내적, 외적 혼란 속에서 평화를 갈구하던 나는 이중의 위기에도 불구하고, 침묵을 찾아 떠나기로 했다.

주말 강화도로 향하며 바이러스를 걱정했는데 길목마다 마주친 것은 방호복을 입은 의료진이 아니라 군장을 갖춘 해병대 병사들이었다. 그렇다. 본의 아니게 전선으로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때는 북한에서 6월 4일 김여정 제1부부장의 거친 첫 담화로부터 6월 16일 오후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의 충격적 폭파를 보게 되고, 북한군 총참모부의 4대 군사 행동 계획이 나온 데 이어 1200만 장의 대남전단 살포 준비, 그리고 대남 확성기 재설치가 숨 가쁘게 이어지던 시기. 군사적 긴장을 음악으로 비유하자면 하필 폭풍 같은 포르테의 최고조부에 서부전선을 향해 달려가는 꼴이었다.

하지만 알이 꽉 찬 꽃게탕은 맛있기만 했고, 서해의 해넘이는 숨 막힐 듯 아름다웠다. 주말의 휴양지와 수도원은 그저 평화로울 따름이었다. 피정에는 정치인, 기업인, 경제 전문가, 시사 평론가 등이 모여 현 시국을 걱정했지만, 말의 성찬일 뿐 정작 할 수 있는 것은 사제의 제안으로 주님 앞에 머리 숙여 마음 모아 기도하는 일이었다. 어디선가 수녀들의 찬미가 들려왔다.

그로부터 사흘 후 북한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예비 회의에서 대남 군사 행동을 보류한다는 속보가 쏟아졌다. 왠지 그 밤의 기도가 다시 회상되었다. 일단은 선물처럼 찍혀진 쉼표에 안도했지만, 분쟁의 ‘보류’는 온전한 평화 상태가 아니다.

평화는 쉼표가 아니다. 결코, 정적인 상태가 아닌 것이다. 평화를 만들고 유지하고 지켜내는 데에는 어쩌면 전쟁보다 더 큰 에너지가 필요하다. 평화에는 전쟁보다 더 큰 인내가, 더 큰 희생이, 더 큰 용기가, 더 높은 지혜, 더 깊은 믿음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조금 더 실용적인 질문을 던져보자. 우리에게 왜 평화 교육, 평화 훈련, 평화 연습은 없을까? 더 적극적인 평화의 교육이 필요하다. 일상 속에서 우리 자신과 우리의 아이들에게 평화의 방법을 훈련해야 한다. 전쟁을 연습하는 것보다 더욱 힘을 써 평화의 생활을, 평화의 삶을 연습해야 한다. 그래야 평화가 가까워지고 언젠가 실현되지 않겠는가.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마태 5,9)

평화가 힘든 복잡한 시대다. 평화로 가는 길은 고단하고 힘든 길이다. 하지만 멸망보다 생명으로 향하는 것이 역사의 진화이니 평화는 그래도 가야만 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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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0-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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