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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단상] 나의 아주 오래된 냉담 해빙기(정다운, 프란체스카, 방송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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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27일. 드디어 마흔네 살에 받게 된 견진성사.

신앙인으로는 참 어른이 된 뜻깊은 날이자, 개인적으로는 신앙 경력 단절 24년 만의 역사적인 날이었습니다. 어릴 때 주일학교, 여름 신앙학교도 꼬박꼬박 다니고, 미사 반주도 하고, 교리 경시에 나가 상도 받던 열혈 프란체스카는 너무 초반에 힘을 다 뺏던 탓일까요, 고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입시를 핑계로 띄엄띄엄 나일론 신자의 수순을 밟다가 성인이 된 이후에는 본격적인 냉담의 길을 걸으며 신앙의 번아웃(?)을 선언했습니다.

그러던 지난해 어느 날, 친한 후배가 오랜 고민 끝에 가톨릭으로 개종을 결심하고 세례를 받게 되었다며 대모가 되어달라는 요청을 했고, 전 흔쾌히 수락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프로그램 제목 짓는 것보다 더 심사숙고하며 세례명을 고르는 회의도 했고, 묵주 반지 디자인도 골라주며 온갖 오지랖 대잔치를 벌이던 중 엄청난 오류를 발견하게 됐습니다.

“언니, 대모님 되실 분 견진 증명서 받아오라는데?”

“대모님은 견진성사를 받은 사람만 된대?”

“어릴 때 교리 경시대회 상 받은 거 맞아? 어떻게 나보다 더 모르냐….”

그렇습니다. 저는 견진성사를 받은 적이 없는, 애초에 대모의 자격을 갖추지도 못한 냉담자이자 심지어 그 사실도 후배한테 전해 듣고 알게 된 왕무식자였던 것입니다.

그날의 해프닝 이후, 후배한테 당한 망신으로부터 시작된 감정인지, 신앙을 끊고 지낸 세월의 공허함에서 온 건지 설명할 순 없었지만, 복잡하고도 묘한 각성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제 발로 성당을 찾아가 하느님과 어색한 대화를 시도해 보았습니다. 오래 헤어졌다 만난 옛 친구처럼 처음에는 쭈뼛쭈뼛하다 어느 순간 대화는 폭풍 수다로 이어졌습니다. 하느님과 잠시 헤어져 있는 동안 치열하게 살았던 20ㆍ30대 이야기, 40대가 된 지금의 고민들,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틈날 때마다 미사를 드리고 묻고 또 물었습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다시 하느님은 제 삶의 일부로 스며드셨습니다. 대모를 부탁했던 후배는 그사이에 세례를 받아서, 함께 견진 교리를 받게 되었고, 저는 교리를 들을수록 부족했던 신앙의 부분을 채워 나가며 더 배우고 싶고, 더 알고 싶어졌습니다.

분명 어린 시절 만났던 하느님과 지금의 하느님이 다른 분은 아니실 텐데…. 왜 지금이 더 가깝고 평온하게 느껴지는 걸까요? 제가 만난 하느님은 그 옛날 왕성한 신앙 활동을 할 때, 흐뭇하게 저를 보셨던 분일 뿐만 아니라, 제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심지어 미사를 멀리하며 냉담 중일 때도, 힘겹게 돌아돌아 24년 만에 찾아가도 변함없이 그 자리에 계시는 하느님이셨습니다.

어찌 보면 세례는 제 의지 없이 그저 주어진 거였지만, 이제는 ‘때가 이르러’ 인간적으로도 성장하고, 자기 내면에 귀 기울일 줄 아는 내공을 갖춘 어른 프란체스카를 하느님은 계속 기다리고 계셨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너 없이 너를 창조하신 하느님께서는 너 없이 너를 구원하지 않으신다.”(성 아우구스티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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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0-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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