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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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편지] 만남 / 박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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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인연을 만난다는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우연한 일이 또 다른 우연을 가져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 어쩌면 예정된 만남, 즉 인연이 아닐까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오래전 예수회에서 만든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한 ‘이웃살이’ 터전 일을 하신 신부님을 떠올릴 때 그렇다. 외국인 노동자들과 관련한 온갖 궂은일을 하면서도 힘든 이야기를 가벼운 농담처럼 하다가 입 양쪽 끝을 올리면 그만이었다. 몇 년을 교포 사목으로 외국에 파견되었을 때는 귀국하면 만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귀국한 후 우연한 기회에 한 번 만나 인사하고는 연락을 하지 못했다.

가끔 그 신부님을 떠올리면 작은 미소가 떠오른다. 외국인 사목과는 전혀 관계없는 일로 만난 신부님에게 기도라는 큰 빚을 졌던 부채감을 아직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바쁜데도 먼 길을 마다않고 달려와 병자를 위해 마지막까지 기도를 해주셨지만 큰 고마움은 마음속에만 담아뒀다. 분명히 소중한 인연이고 만남이었을 텐데. 하지만 그분의 큰 그림자로 또 다른 분과의 만남이 계속 이어졌으니 좋은 인연은 꼭 만나지 않아도 쉬이 끊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겠다.

누군가 안부가 궁금하거나 보고 싶은 생각이 들 때면 종종 노트에 이름을 적는 습관이 있다. 그 사람과 나누었던 많은 이야기를 떠올리면서 책 이야기, 관심, 공통점, 부러운 점, 저마다 다른 점, 특기 그리고 후기까지 쓰다 보면 그 사람은 멀리 있지 않고 바로 내 옆에 가까이에 있음을 알게 된다. 만나지 않아도 때때로 떠오르기만 해도 꽤 괜찮은 인연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책을 읽을 때 떠오르는 사람이면 더욱 소중하다. 다 잊어버린 줄 알았는데 글귀 사이사이에 숨어 있다가 톡 튀어나와서 “안녕?” 손을 흔드는 밝은 모습에 읽다 만 책을 앞에 두고 한참 생각하는 것이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음에도 미처 다 못했던 말이 떠오를 때 신부님처럼 입가를 올려보는 것이다. ‘이 말은 안 했어야 하는데…’ 하는 가벼운 자책이 일 때도 보고 싶은 사람은 늘 내 곁에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 기분이 꽤 좋아진다. 그 사람에 대한 좋은 감정과 배려를 잊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내 삶에 큰 힘이 되기 때문이다.

얼마 전 한 통의 문자를 받았다. 모르는 전화번호였고 부고 문자였다. ‘이 아무개 아들 OOO이라고 합니다. 어제 저희 어머님께서 병환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이에 삼가 부고를 전합니다…’였다. 이 아무개는 7~8년 전까지 함께 일을 했던 젊고 유능했던 사람이었다. 강의로 바쁜 가운데서도 여러 권의 책을 내고 자신의 삶에 전력투구한 열정적이었던 사람이었다. 아직은 젊은 나이라는 것과 뜻밖의 부고에 깜짝 놀라면서도 한편으로 내 전화번호가 아직 그 사람의 휴대폰에서 지워지지 않았다는데 생각이 미쳤다. ‘내 마음에 남아 있던 그 사람도 나처럼 오래 가끔 나를 떠올렸다는 것인가, 만나고 싶었던 많은 시간을 휴대폰 전화번호를 지우지 않음으로써 남기고 싶었던 것인가’였다. 어쩌면 그 사람 역시 나처럼 전화만 하면 언제든지 만날 것이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늘 마음 한쪽에 남아 있는 그 자체가 만남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문자에 답장을 쓰면서 돌아간 분과 아직은 젊은 유가족에게 짧은 안부를 전하면서 엄마가 없어도 잘 살아주기를 기도하였다. 기도를 통해 그 만남이 끝이 나지 않았음에 감사했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박해림(아녜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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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0-08-04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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