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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단상] 아버지의 손사래(임선혜, 아녜스, 성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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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여라도 성당 같은 데에 나갈 생각일랑은 아예들 마십시오!’’

새로 이사한 집에 놀러 오신 이웃분들과 밥 한 끼, 술 한 잔 나누다, “이 댁은 성당에 다니시는 것 같던데…. 성당은 어때요?” 하고 물어오면 아버지가 과장되이 손사래를 치며 하시는 대답이었습니다.

이때 어머니는 그저 옆에서 조용히 웃으셨고요. 처음엔 깜짝 놀랐던 저도 언제부턴가 아버지의 이 기발한 전술을 스릴있게 지켜보았습니다. 저희는 아버지의 직업으로 인해 여러 도시로 이사를 자주 다녔는데, 그때마다 한 번씩 벌어지는 촌극이었던 것입니다.

늘 좋은 이웃을 만나 서로 현관문을 열어놓고 지내다시피 하니, 밥상에 숟가락 몇 개 더 올려 함께 식사하는 정겨운 일이 빈번했습니다. 굳이 ‘천주교’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지만, 우리 집 거실 한가운데에는 늘 십자고상이 걸려 있었고, 그 아래에는 온화한 모습의 성모상과 기도책들이 놓여 있었습니다. 이웃들은 우리 가족이 매 주일이면 단정하게 예의를 갖추고 미사를 드리러 가는 것을 보았고, 저녁 무렵이면 어머니와 묵주 기도를 바친다는 것도 차차 알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서로의 일상을 알아가며 점점 허물없는 사이가 되었고, 서로의 애경사에 진심으로 함께하는 친구가 되어 갔습니다. 그즈음부터 어쩌면 어머니와 아버지는, 다니는 성당에 대해, 신앙생활에 대해 이런저런 솔직하고 진실된 이야기를 큰일 아닌 듯 자연스레 나누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다 몇 해가 지나면 깊이 정든 사람들을 뒤로한 채 아쉬운 작별을 하고 우리 가족은 다시 떠나야 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곳에 적응될 무렵 걸려오는 전화, “우리 부부 입교해서 교리 공부 시작했어요! 두 분이 우리 대부, 대모 서줄 거죠?!” 그 세례식 날짜를 달력에 체크하며 기쁨에 들뜬 어머니와 아버지의 환한 얼굴을 보며 생각했습니다. “어쩜 이번에도 똑같은 기적이 일어났네!” 몇 번이고 반복되는 이 신기한 일이 제겐 마치 기적처럼 보였습니다.

집안의 종손으로 열심한 개신교 신자이던 아버지는, 친구 아버님 상갓집에서 한 신부님이 교우들과 제사 음식을 나누는 모습을 보신 것을 계기로 개종하셨다고 합니다. 한편 옛 교우촌에서 자라며 가톨릭계 초등학교에 다녔던 어머니는 성가단원이 되었지만, 부모님이 비신자여서 세례도 첫영성체도 할 수 없으셨습니다. 성인이 되고 나서야 세례를 받고 오래 기다렸던 첫 성체를 받아 모셨다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스스로 믿음의 길을 간절히 바라던 부모님은, 무엇이 사람을 신앙으로 이끄는지 본능적으로 아셨던 것일까요. 어쩌면 애초 그 무엇도 작정하지 않았기에 기쁨을 마치 엉겁결에 받은 선물처럼 느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저 함께 즐겁고 사이좋게 지냈을 뿐인데!”라며 말이죠.

가장 따뜻하고 보편적인 전교의 방법을 저는 귀한 유산으로 받았습니다.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0-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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