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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편지] "일어나 함께 가자! 내가 너에게 힘을 준다!” / 강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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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나서다 1초의 현기증으로 뒤로 넘어져 열세 계단을 굴렀습니다. 계단에서 뒤로 넘어지면 죽는다는데. 까마득한 세상에 잠깐 머물렀습니다. 솜이불처럼 부드러운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이렇게 폭신한 계단을 보았느냐? 아무 걱정 말아라.” 하나 둘 모여든 분들의 걱정을 뒤로 하고 아무 이상 없이 순간의 해프닝이 끝났습니다. 당신은 쉬지 않고 기적을 베푸시는군요. 참 적재적소에 계십니다.

코로나 19가 한창인 요즈음, 작은 학원을 운영하는 저의 일상은 아슬아슬합니다. 뉴스에서 들려오는 2.5단계 격상 또는 3단계 결정 여부 임박 소식에 신경이 곤두섭니다. 마음을 다했던 수업 시간, 하나 둘 빠져 버린 아이들 책상을 보며 마음 한쪽이 쓸쓸해집니다. 그러다 십자가 달리신 당신을 봅니다. 머리카락 한 올까지 세어두신 당신의 지긋한 눈을 바라봅니다. “얘야, 왜 이다지도 믿음이 약하냐? 왜 빈자리만 보고 있느냐?” 안타까워하시는 음성이 들려옵니다. 그렇습니다. 제 눈은 빈자리만 보고 있었습니다. 코흘리개 때부터 고등학생이 된 지금까지 묵묵히 함께하는 찬이와 준이, 이번에 고등학생 되는 진이와 종이와 건, 사관생도를 꿈꾸는 훈이와 현이 등등, 나의 힐링 파트너들은 벌써 수 년 동안 학창시절의 추억을 이곳에서 가꾸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어수선한 주변 상황들에 부화뇌동합니다. 모두에게 사랑받고 싶은 욕심, 늘 앞서가야 한다는 교만,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경직된 마음이 십자가에 달리신 당신의 쓰린 고통을 정면으로 바라보지 못하게 합니다. 오늘도 이웃을 비판하면서 저 자신의 티끌은 보지 못합니다. 당신의 뜨거운 눈길을 피해 얄팍해진 채로 당신 발치에 머물러 있기도 합니다. 맘껏 기뻐하며 기쁨 속에 뛰어들지도 못합니다. 그런 곳에서 추워 떨면서 당신은 계시는군요. 가면을 쓴 채 진짜 자기를 보여주지 않는 세상의 가시덤불에서. 가장 착한 척, 가장 정의로운 척하며 서로를 배척하는 돌밭에서. 시기와 미움의 또아리를 가슴 밑바닥에 숨겨 놓고 썩은 냄새나는 웃음을 흘리며 누군가를 평가하고 저울질하는 길가에서. 이 편이다 혹은 저 편이다 편가름하며 상처로 얼룩진 몸뚱이를 무기삼아 휘두르는 장터에서. 당신 얼굴을 바라보니 피눈물이 범벅이 되었군요. 가슴까지 흘러내린 그 눈물이 저의 냄새나는 몸으로 흘러들어오는군요. 결국 다치신 건 또 당신이군요. 이렇게 오늘도 당신을 아프게 했습니다.

이런 날 어디서 택배 한 상자가 도착했습니다. 초콜릿 색깔의 리본이 달린 작은 상자입니다. 선홍빛 무화과와 노란 레몬과 애플 망고와 자몽, 그리고 멜론과 키위들이 옹기종기 모여 저를 봅니다. 어디서 왔을까요? 이 푸른 냄새와 빛깔과 눈물나도록 따뜻한 전언은? “가족과 함께 기쁜 성탄 맞이하세요!” 아주 평범한 이 메시지는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의 편지입니다. 당신과 나, 일대일 관계로 오롯이 돌아가자고, 거기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선한 당신과 저 외엔. “언제까지 참아줘야 한단 말이냐” 라고 하셨던 그 언제. 손에 입맞춤하며 또 발걸음을 내딛습니다. 그리고 다시 예쁜 열매들, 푸른 향기 나는 아이들 만나러 줌으로 들어가 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강진주(로사) 시인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21-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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