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마리아 여사. |
1930년 오스트리아에서 출생한 하마리아 여사는 1959년
선교사로 한국에 입국해 33년간 가난한 이웃과 사회 약자를 위해 헌신적으로 사랑을
펼쳐온 마산교구 사회복지사업의 대모이다.
대구대교구 평신도 사도직 협조자로 효성여대에서
독일어를 가르치는 일로 선교사 활동을 시작한 그는 종전 후 경제적 어려움으로 고통을
겪는 가난한 이들을 위해 복지사업에 투신했다. 그는 먼저 불우한 구두닦이 소년
16명을 위한 보금자리를 마련해 뒷바라지했다. 먹을 것이 없어 굶기 일쑤였고 외국의
구호품으로 끼니를 이어야 했던 그는 구두닦이 소년들과 함께 설탕물로 주린 배를
채우며 그들을 돌봤다.
1962년 SOS어린이마을을 창설해 5년간 초대 원장직을
역임한 하마리아 여사는 1965년 마산교구 설정과 함께 초대 교구장으로 임명된 김수환
추기경의 요청으로 마산교구 평신도 사도직 협조자로 활동했다. 마산으로 내려온
그는 무의탁 결핵 환자와 마산수출자유지역 근로 여성 등 사회 약자들의 벗이 됐다.
가포국립결핵요양소 교리교사, 진영결핵요양소 설립, 가톨릭여성회관 초대 관장 등의
이력에서 볼 수 있듯 마산교구 사회복지사업은 하 마리아 여사와 궤를 같이한다.
그의 행적은 1977년 5ㆍ16 민족상 사회부문 수상, 1989년 제1회 복십자대상 봉사
부문상 수상, 1991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으로부터 십자훈장 수상 등 수상 경력에서
잘 드러난다.
하마리아 여사는 생전에 “시작은 오스트리아인이
했지만, 한국인들과 함께했기에 나는 하나의 도구로 일해왔다”며 평소 자신을 드러내기
꺼렸다. 건강 악화로 1992년 고국 오스트리아로 귀국해 고향의 노인복지아파트에서
여생을 보냈다.
한국을 떠나면서 “33년간의 한국생활은 나의 생을
충만하게 했으며 더 이상의 여한이 없을 만큼 행복했다”고 회고한 그는 귀국 후
마산교구와 오스트리아 그라츠교구가 자매결연을 하는 데 힘을 보태면서 “고국에
가서도 한국의 얼을 심는 선교사로 살겠다”는 약속을 지켰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