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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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순교영성에 물들다 (1) 천호성지

순교자 삶·신앙에서 인생의 중요한 가치 깨달아
하느님 부르던 간절한 외침 ‘천호’
굶주림·헐벗음 속에 선택한 믿음
“어떻게 그렇게 믿을 수 있었을까?”
익숙함에 무뎌진 신앙 반성 계기
나를 믿고 도전할 수 있는 힘 얻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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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이 오는 8월 아시아청년대회를 통해 한국 순교자의 삶을 배우려는 청년들을 만나러 한국에 온다. 가톨릭신문은 교황 방한을 맞아 청년들의 성지순례를 기획, 청년들이 순교영성을 체득하는 기회를 마련했다.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강석진 신부와 함께 성지를 순례하며 순교자의 삶을 만나는 청년들의 모습을 3회에 걸쳐 연재한다.



■ 하느님을 부르던 교우촌

박해를 피해 깊은 산골로 숨어든 신자들은 함께 모여 기도하며 하느님을 불렀다. 그 간절한 외침으로, 신자들의 마을에 천호(天呼)라는 이름이 붙었다. 10일 청년들이 향한 성지는 박해시대부터 신자들이 대대로 살아온 교우촌, 천호성지다.

순례에 앞서 강석진 신부가 청년들에게 성지에 관해 설명했다.

“오늘 우리가 가는 천호성지는 교우촌입니다. 순교자들은 믿음을 얻고 바로 순교한 것이 아니에요. 교우촌에서 신앙생활을 하며 ‘저런 사람들과 함께라면 어디든 갈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할 정도로 강한 유대관계를 맺었습니다. 성 조화서와 성 조윤호 부자는 서로 “죽어서 천국에서 만나자”고 독려했습니다. 만약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면, 혹시 껄끄러운 관계였다면 그렇게 말할 수 있었을까요? 천호성지는 우리가 일상에서 맺고 있는 ‘관계’를 생각할 수 있게 해줄 것 같습니다.”


▲ 천호성지에서 만난 김진소 신부(맨 오른쪽)의 이야기를 들으며 환하게 웃고 있는 순례 참가자들. 왼쪽부터 김종혁·한지혜·우승엽씨, 강석진 신부.
 
■ 관계 속에 살아가는 청년

청년들은 관계 속에서 갈등하고 고민하며 살아간다. 이번 순례에 함께한 청년들도 마찬가지였다. 청년들은 자신들의 고민을 성지에 내어 놓았다.

주일학교 교리교사로 활동하고 있는 한지혜(소화데레사·23·인천교구 원종2동본당)씨는 부모가 자녀에게 신앙을 전하는 모습에 고민하고 있다. 한씨는 교사활동을 하면서, 신앙생활에 열심한 신자들이 정작 자기 자녀들에게는 “일단은 학업에 집중하라”면서 주일학교 대신 학원에 보내는 모습을 자주 봤다. 반대로 한씨의 어머니는 ‘학교는 안 가도 성당을 가야 한다’고 가르쳤고 자신도 무리 없이 그 방침에 따라왔지만 동생들은 힘들어하며 반발했다.

취업준비생인 김종혁(로베르토·28·의정부교구 행신2동본당)씨는 자기 자신을 대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낀다. 취업을 위해 본래 자신의 전공이었던 미술을 포기하고 다른 분야에 취직을 준비하는 그는 최근 무기력증에 빠졌다. 기술도 배우고 이력서를 계속 내보고 있지만 떨어지기만 하는 나날을 보내다보니 자신감도 잃고 게으름에 빠졌다. 심지어 어떤 날은 하루 종일 집에서 잠만 자기도 했다.

우승엽(미카엘·25·서울대교구 수색본당)씨는 하느님을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군 생활 중에 냉담을 풀고 신앙을 찾은 우씨는 해외봉사, 가톨릭스카우트, 세계청년대회 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 하지만 자신이 믿는 하느님을 어떻게 남에게 설명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의문에 빠졌다. 물질적인 가치보다 하느님의 가치가 더 중요하다고 믿고 있지만, 두 가치를 현실 안에서 어떻게 실현시키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에 관해서도 내적 갈등을 겪고 있다.
 

▲ 강석진 신부가 기해박해 순교 100주년 기념 순교자현양비 앞에서 청년들에게 박해와 순교자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청년, 순교자와 만나다

청년들은 성지에서 먼저 순교자묘역을 찾았다. 천호에서 살다가 순교한 순교자들의 묘역이었다. 강 신부의 설명이 이어졌다.

“여기에는 성인들의 묘도 있지만 무명순교자의 묘도 있습니다. 무명순교자들은 이름조차, 그 존재조차 하느님께 내어 맡긴 분들입니다. 순교자들의 기록을 보면 배교 강요에 ‘어떻게 내 아버지를 버릴 수 있는가’라고 대답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분들에게는 하느님은 ‘살아있는 아버지’였습니다.”

교우촌은 혈족 중심의 씨족 공동체였던 당시 사회에서 신앙이 중심이 된 새로운 공동체였다. 신분도 없었다. 양반, 천민 할 것 없이 함께 가진 것을 나누고 신앙을 지켰다. 청년들은 그 신앙공동체가 살아가던 현장을 순례하며 그 삶을 묵상했다.

“어떻게 그렇게 믿을 수 있었을까?”

순례를 하던 우승엽씨에게서 떠나지 않던 질문이었다. 성지를 순례하며 순교자들의 삶의 자리와 만났지만 청년들에게는 아직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다. 청년들은 순교자들의 연구에 평생을 바치고 천호성지 인근에 머물고 있는 김진소 신부와 만나며 그런 의문을 풀어갔다.

“지금의 내 생활만 생각해서는 선조들이 굶주림과 헐벗음을 이겨낸 것을 이해할 수 없죠. 교우촌의 신자들은 관가에 끌려가 죽은 사람보다 굶주림에 죽은 사람이 더 많았어요. 신앙을 선택했기에 고통스러운 일상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이죠.”

녹음이 우거진 천호성지는 고요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머금고 있었지만, 이곳에서 살아가던 신자들에게는 그저 척박한 삶의 현장이었다. 신분의 틀을 벗어던지고 신앙 하나로 묶인 공동체를 이뤘지만, 당장 먹고 살 것조차 없는 생활고에 맞닥뜨렸다. 한 삽만 파도 돌덩어리가 나오는 산 속에 밭을 일궜지만 그런 자갈밭에서 키울 수 있는 작물은 조, 콩, 팥 정도의 작물정도였다. 그런 고통 중에 신앙을 믿었다.

김 신부의 설명에 한지혜씨는 “신앙생활이 계속 해오던 일이라 익숙함 때문에 무뎌진 것이 아닌가 한다”며 “스스로 신앙을 찾는 사람들이 부러울 때도 있다”고 고민을 털어놨다. 김 신부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이를 먹으면 느닷없이 깨달을 때가 있을 거예요. 순교자들은 신앙에 확고한 가치관이 있었는데 젊은 사람들에게 그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는 하느님이냐 맘몬이냐 하는, 가치관의



가톨릭신문  2014-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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