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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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지에서 온 편지-남수단] 헛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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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건기가 시작된 후로 공소방문을 다니고 있습니다. 수요일과 금요일에 공소를 하나씩 방문하자는 계획을 세우고, 세례 계획이 있는 공소를 우선적으로 선정했습니다. ‘아부나곳’이라는 공소에 가는 날이었습니다. 본래 수요일에 가기로 했는데 다른 일이 생겨 급히 방문 일정을 변경해야 했습니다.

아부나곳은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배를 타고 강을 건너가면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곳입니다. 차를 타고 가면 쉐벳을 거쳐 빙 돌아가기 때문에 두 시간 반 정도가 걸립니다. 오늘은 전해줄 선물도 있고 짐도 있어 차를 타고 가기로 마음을 먹고 출발했습니다. 처음 가는 곳이기에 교리교사 한 명과 동행하고, 공소 교리교사는 중간 지점인 바르겔이라는 곳의 다리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해놓았습니다.

전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교리교사 모임 때 우스갯소리로 아부나곳 교리교사에게 쉐벳 소속으로 공소를 옮기자 했습니다. 정지용 신부님께도 쉐벳에서 아부나곳 공소를 맡으시라 하니, 직선거리로는 아강그리알이 더 가까우니 안 된다고 우스갯소리를 받으셨습니다. 그런데 교리교사는 이 우스갯소리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서 쉐벳으로 소속을 옮기겠다는 편지를 써와 거절해야했습니다.

바르겔 다리를 건너 주변을 둘러보며 나를 기다리고 있을 공소 교리교사를 찾는데,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지나는 마을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 겨우 도착했습니다. 차로 두 시간 반이나 걸리는 머나먼 여정이었습니다.

공소에 도착하니 교리교사가 보이지 않습니다. 보통 공소에 신부가 방문하는 날이면 사람들이 미리 모여 노래를 하면서 신부를 기다리는데, 왠지 오늘은 한산합니다. 사정을 들어보니 공소 방문이 어제인 줄 알고 하루 먼저 마을 사람들이 전부 모여 북치고 노래하며 신부를 종일 기다렸다고 합니다. 교리교사도 바르겔 다리에서 하염없이 기다렸다고 합니다.

순간 ‘두 시간을 넘게 운전하고 겨우 찾아왔는데, 헛걸음 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시에 ‘어젠 마을 사람들이 하루 종일 기쁜 마음으로 신부를 기다렸을 텐데 어찌됐건 큰 실망을 안겼구나’하는 미안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어제의 무의미한 기다림에는 한 마디 불평 없이 다시 반갑게 맞아주는 마을 사람들에게 큰 고마움을 느꼈습니다. 간단하게 챙겨간 약품들을 이용해 가벼운 환자들을 처치해주고, 가져간 배구공과 노트와 펜을 나눠줬습니다.

다시 2시간 반을 운전해서 돌아가야 했지만 전혀 멀게 느껴지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예정된 세례식을 하지 못해 조만간 다시 와야 하지만 헛걸음했다는 생각도 싹 사라졌습니다. 그저 ‘이렇게 먼 곳에, 이런 부시(숲) 안에 신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내가 너무 늦게 왔구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세례는 미뤄졌지만 그들의 마음을 보고 와서 이 길이 전혀 의미 없진 않았습니다.

다음에 아부나곳을 방문할 때엔 배를 타고 강을 건너 갈까합니다. 이상협 신부님은 배를 타고 가다가 배가 뒤집어지는 사고도 당했다고 하는데, 차로 가기엔 조금 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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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권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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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7-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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