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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알 하나] 그 말씀, 참 흥미롭군요! (1) / 한민택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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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유학 시절, 한 알프스 산자락에서 여름방학을 보낸 적이 있습니다. 당시 저는 파리 근교의 폴란드 기숙사에 살고 있었는데, 그곳에는 볼렌스키 몬시뇰께서 함께 살고 계셨습니다. 몬시뇰님은 해마다 여름을 절친이신 코르벵 신부님과 알프스 지역의 산장 사제관에서 지내곤 하셨는데, 그해 여름 저를 초대하신 것입니다.

어느 날 아침 저는 볼렌스키 몬시뇰과 신문을 사기 위해 바(Bar)에 들어갔습니다. 그곳에는 한 할아버지가 맥주를 시켜놓고 있었는데, 처음 보는 우리에게 반갑게 인사를 하며 말을 건네는 것이었습니다. 뭐하는 사람이냐, 어디서 왔느냐. 그리곤 우리가 가톨릭 사제이며 신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는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나는 겨울에는 스키 강사일을 하고 여름엔 양들을 치는 일을 합니다. 때로 양들과 산속 깊이 들어가 한 달 이상을 지내는 적도 있는데, 어두운 밤중에 갑자기 폭풍우라도 몰아치는 날이면 두려움에 떨며 하느님께 도움을 청하며 기도하곤 합니다. 하지만 교회에서 하는 우스꽝스러운 이야기들, 가령 마리아가 동정으로 아기 예수를 낳는다거나 하는 이야기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내심 저명한 신학자이신 볼렌스키 교수님께서 명쾌한 답을 주실 것이라 기대하였습니다. 그런데 몬시뇰의 반응은 놀라웠습니다. 할아버지의 말씀을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답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 참 흥미롭군요!”

그날 아침 바에서 일어난 일은 저에게 긴 여운을 남겼습니다. 나라면 어떻게 답했을까? 그리고 수년이 지난 지금 저는 볼렌스키 몬시뇰님의 그 말씀이 진정한 답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아침 9시에 생맥주를 마시며 우리와 흥미로운 아침을 시작했던 할아버지, 그분은 최소한 자기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흥미를 보이며 고개를 끄덕이던 나이 많은 할아버지 신부님을 알게 된 것에 기뻤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이야기가 허무맹랑한 것이 아니라는 것에 자부심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분이 다소 공격적인 태도로 우리에게 말을 건넸을 때에도, 불신앙을 퍼뜨리려는 ‘불순한’ 의도를 지니지 않았던 것은 분명합니다. 그분은 마리아의 동정 잉태와 같은 이야기가 믿기 어렵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었고, 그 생각에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신부를 만났던 것이며, 그의 말에 공감하면서도 믿기를 포기하지 않는 한 사제를 알게 된 것입니다.

두 분이 믿기 어렵다는 것에 공감하고 있는 동안 어떤 답을 해야 할까만 고민하고 있던 저 자신을 반성하게 됩니다. 사실 믿기 어렵다는 것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믿기 어렵다는 것을 솔직히 인정하는 순간, 중요한 사실 하나가 눈에 들어옵니다. 그것은 마리아 역시 믿을 수 없다고 반신반의했다는 사실입니다.

가브리엘 천사의 인사말에 마리아는 몹시 놀라며 ‘이게 무슨 말이야(마리아)?’하고 곰곰이 생각했으며, 천사가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전했을 때,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루카 1,34)하고 질문을 던졌던 것입니다. 마리아는 저보다 훨씬 현대적인 감각으로 주님의 천사에게 반문할 수 있는 용기를 지녔던 것 아닐까요?


한민택 신부 (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7-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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