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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종 홍용호 프란치스코 보르지아 주교와 동료 80위’ 시복 현장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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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종 홍용호 프란치스코 보르지아 주교와 동료 80위 시복을 위한 현장조사가 5월 24일 진행됐다.

‘하느님의 종’들의 ‘공적 경배 없음’을 확인하기 위해 마련된 이날 조사는 교구장 이용훈 주교, 교구 사무처장 양태영 신부, 현장조사 교구 담당 설종권 신부 등 교구 관계자 3명과 재판관 대리 박선용 신부, 총무 류한영 신부, 장후남 공증관 등 재판진 4명이 동행했다.

교구청에서 법정 제17회기 개정을 마친 뒤 북수동성당으로 이동한 조사단은 데지레 폴리(1884~1950) 신부의 사목지를 둘러봤다. 동료 신부와 함께 대전 프란치스코 수도원에 감금돼 있다가 1950년 9월 공산군들에 의해 피살된 것으로 알려진 폴리 신부는 시신이 발견되지 않아 실종자로 분류됐다. 이후 수원 신자들은 1995년 9월 17일 북수동성당 구내에 폴리 신부의 유품 전시장을 만들고 기념비를 건립했다. 이날 조사단은 심뽈리 화랑에 소장돼 있는 십자가와 성작, 성합, 성광 초상화를 살펴봤다.

오후에는 앙투안 공베르(1875~1950) 신부의 사목지인 안성성당과 흉상이 설치된 안법고등학교를 둘러봤다. 안성성당 초대 주임으로 사목했던 공베르 신부는 검소한 생활로 신자들에게 모범을 보였던 사제다. 1919년 3·1운동 당시에는 일본 경찰에게 쫓겨 성당 구내로 피신한 안성 주민들을 보호하고 부상자들을 직접 치료하기도 했다. 그 뜻을 기려 2009년 안법학교에서는 신부의 흉상을 세워 그의 이웃사랑과 평화의 실천을 알리고 있다.

이어 조사단은 조제프 몰리마르(1897~1950)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사목했던 평택성당으로 이동했다.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였던 몰리마르 신부는 1950년 6·25 전쟁 중 잠시 피신했다가 신자들이 괴롭힘 당할 것을 염려해 다시 성당으로 돌아와 있다가 체포됐다. 그가 공산군에 의해 피살된 후 금사리본당 신자들이 그의 시신을 찾아 목동 프란치스코 수도원 뒷산에 임시 매장했고, 1960년 대전교구 산내 공원묘지 성직자 묘역으로 옮겨졌다. 이후 2003년 4월 평택본당 신자들의 요청에 따라 평택성당 구내로 유해를 옮겨 안장했다. 평택성당에 도착한 현장조사단은 구내에 있는 묘소와 기념 정원을 둘러보고 공적 경배 없음을 확인했다.

교구장 이용훈 주교는 이날 현장조사를 동행하며 “모든 신자들이 신앙 때문에 순교하신 분들의 삶을 이어받을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 같다”며 “조사를 통해 그동안 확인할 수 없는 부분들을 살피며 신자들의 공경심을 고취하고 신앙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부분들을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민경화 기자 mkh@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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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9-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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