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9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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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알 하나] 보이지 않는 것을 찾는 노력 / 박유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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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다 가끔은 옛날 말이 요즘 환경과 조금 거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LED 전구가 대세인 요즘에 ‘등잔 밑이 어둡다’라는 말은 뭔가 상상하기 어려운 듯하다. 하지만 늘 가까운 곳에 있는데도 주의를 놓치곤 하는 내 정신머리에는 유감스럽게도 너무나 적용이 잘 되는 옛 지혜인 듯하다.

의욕만 많던 첫 본당 주임시절, 내 자신의 미숙함과 좁은 시야를 반성하게 된 적이 있다.

평소 세상 안 교회의 역할에 있어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는 교회를 강조하며 이를 살아내고자 나름대로 노력했다. 설, 추석 명절엔 관할지역의 어려운 이들을 위해 명절 음식과 더불어 작게나마 지원금도 나누고, 추수감사미사를 지낸 이후에도 또 나눔을 하고, 김장 나눔도, 추수 이후 쌀배달도 하는 등 본당 사회복지분과 행사에 기꺼이 동참하며 즐겁게 일했다.

또 사목하면서 축복예물이나 감사예물이 생기면 보다 필요한 곳에 아낌없이 탈탈 털어 나누는 노력을 했다. 이주민센터에 기금으로 후원하기도 하고, 타 교구의 외진 시골에 신설본당을 세우려 할 때 작게나마 힘을 보태고, 해외선교지에도 후원을 보내고, 가난한 필리핀 교회에 구호의 손길을 보내는 노력도 했었다. 또한 개인적으로는 청렴하고 검소한 삶을 살고자 나름 애썼다. 티는 안 냈지만 마음속 저 깊은 한구석엔 그래도 내 자신이 못 사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던 거 같다.

그러던 어느 날, 사회복지분과 일로 성당 바로 근처를 방문하면서 그동안 의식하지 못 했던 가난과 마주하게 되었고, 그동안의 착각과 그로 인한 자부심은 그 순간 산산조각이 되었다. 주변에서 행복지수 높고 그런대로 부족함 없이 사는 동네라고들 했지만 성당 모퉁이를 돌아 바로 근처에 버려져 보이는 불법 컨테이너에서 생활하는 어르신도 있었던 것이다.

왜 그동안 잘 모르고 살았을까? 이에 대해 깊이 반성을 하며 관할지가 넓다고 차량으로만 이동하기 바빴던 내 여유 없는 모습과 더불어 그간 내 기준에서 두드러지는 가난을 찾으려 한 교만을 돌아보게 되었다. 소외와 가난에 대해 생각할 때 무언가 사람들의 시야에서 좀 떨어지고 드문 외지의 상황이란 것으로 설정하고는 이에 집착하고 있진 않았는지, 내 자신의 활동으로 상황이 눈에 띄게 달라지는 그러한 대상을 찾는데 골몰한 것은 아닌지, 마치 무슨 해결과제와도 같이 가난을 빨리 업무처리하려든 것은 아닌지.

그제야 뒤늦게 깨달을 수 있었다. 주위에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이 없어서 눈에 보이지 않던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 진정 가난을 찾지 않았기에 눈에 보이지 않았던 것임을 말이다. 가난을 찾았던 것이 아니라 나의 드러남을 찾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교회 안의 진짜 가난은 이처럼 등잔 밑의 어두운 곳에 자리하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우리의 시선을 잘 보이는 곳에만 두면 딱 거기에 있는 것들만 전부인양 생각하고 또 그것들만 취하게 된다. 근데 내가 정말로 찾는 것이 잘 보이지 않는 곳에 또한 자리할 수 있음을 생각해야겠다. 그리고 이 잘 안 보이는 작은 것을 찾아내기 위해 가만히 손으로 더듬어보는 진중함을 평소에 지녀야 하겠다.


박유현 신부(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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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9-07-23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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