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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인연을 하느님께로] (2) 성 최경환·복자 이성례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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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과천 수리산 속에 있던 ‘뒤뜸이’ 마을은 박해를 피해 천주교 신자들이 들어와 신앙 공동체를 이룬 곳이라고 전해진다. 생계를 위해 담배를 경작했다고 해서 일명 ‘담배촌’이라 불린다. 이곳을 일구고 개척한 이는 다름 아닌 한국교회 두 번째 성직자 최양업 신부의 부친 최경환(프란치스코, 1805~1839) 성인이다.

그는 1805년 홍주 다래골 새터에서 태어났다. 새터는 현재의 충남 청양이다. 조부 최한일 때부터 신앙을 받아들인 집안 영향으로 어렸을 때부터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다. 부친 최인주는 신유박해(1791년)로 시련을 겪은 후 모친을 모시고 낙향해 새터에 자리를 잡았다.

14세에 하느님의 종 이존창(루도비코 곤자가, 1759~1801)의 조카뻘 되는 복자 이성례(마리아, 1801~1840)와 혼인해서 1821년 장남 최양업을 낳았다. 1827년경 가족들을 서울로 데려와 살았으나 박해의 위험이 닥치자 강원도 김성과 경기도 부평으로 이주했고, 이어 1838년 수리산 뒤뜸이에 정착했다. 앞서 최양업은 1836년 초 최초의 신학생으로 선발돼 그해 말 동료들과 함께 중국 마카오로 출발했다.

최경환은 「칠극」(七克)의 가르침을 신심의 바탕에 두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최양업 신부 서한에 따르면 그는 교리에 해박했으며 묵상과 독서를 통한 신심 함양에 힘썼다. 또 이웃과의 나눔과 극기 실천에 뛰어났으며, 예수 그리스도와 성인·순교자들의 모범을 따르고자 노력했다.

모방 신부로부터 수리산 교우촌 회장에 임명됐던 그는 아울러 회장으로서 신자들의 신앙생활은 물론 경제적인 부분에도 깊은 관심을 가졌다.


1839년 기해박해로 인해 많은 순교자가 발생하자 최경환은 신자들과 함께 상경해서 순교자들의 시신을 찾아 안장했으며 다시 수리산으로 내려와 순교의 때를 기다렸다. 평생 교회 가르침 안에서 신자로서의 본분을 따랐던 그는 일찍부터 순교 원의를 지니고 있던 터였다.

최경환은 결국 그해 음력 7월 아내 이성례와 자식들, 교우촌 신자 40여 명과 함께 체포돼 투옥 이튿날부터 문초를 받았다. 아들이 신학생으로 선발돼 유학 간 이유만으로도 형벌은 더 극심했다. 40일 이상의 참혹한 고문 속에 110여 대의 곤장을 맞으면서도 하느님을 증거했다. 굳건한 태도에 외교인들조차 천주 신앙을 찬미하게 했던 그는 9월 12일 포청옥에서 장독사(杖毒死)했다.

「최우정(바시리오)의 이력서」에 의하면 시신은 그의 형 최영겸 부자에 의해 노구산에 안장됐다가 수리산 뒤뜸이 앞산으로 옮겨졌다. 이후 1928년 4남 최신정의 처 송 아가타 증언을 토대로 뒤뜸이에서 유해가 발굴돼 서울 주교좌명동대성당에 안치됐다가 다시 절두산에 봉안됐다. 현재 수리산성지 본묘에는 후손들이 기증한 유해(손뼈 5기)가 안치돼 있다.

이성례는 수리산에 포졸들이 들이닥쳤던 당시 음식을 준비해 대접한 다음 어린 자녀들과 함께 남편 최경환의 뒤를 따라 서울로 올라왔다. 그는 평소에도 자신이 가난할 지라도 주위의 가난한 이들을 먼저 돌보는 삶을 살았다고 한다. 사순시기에는 금육·금식으로 모은 양식을 남편과 의논해서 어려운 신자들과 나눴다.

남편, 자식들과 격리된 채 젖먹이 아들 최 스테파노와 감옥에 갇혔던 그는 300여 대 이상의 곤장을 맞는 등 가혹한 고문을 당했으나 흔들리지 않는 신앙을 보였다. 그러나 젖먹이가 굶어 죽어가고, 남편 최경환이 옥사하자 마음을 접고 배교를 선언했다.

아들 최양업이 신학생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다시 형조로 압송된 이성례는 갇혀있던 신자들이 배교를 취소하고 영광스럽게 순교할 것을 권고하자 재판관 앞에서 당당하게 배교 의사를 거둬들였다.

옥에 있던 아들의 죽음을 보면서도 순교 원의를 잃지 않았던 그는 사형선고를 받은 후 마음이 약해질 것을 우려해 감옥에 찾아온 자식들에게 ‘형장에는 오지 말 것’을 당부했다. 그리고 1840년 1월 31일, 당고개에서 6명 신자와 함께 참수형을 받아 순교했다.

최경환 성인과 이성례 복자 부부는 부친 최인주로부터 이어진 신앙을 배경으로 자기희생과 절제에 바탕을 둔 남다른 자선을 베풀고, 기도와 영적 독서로 얻은 신앙심을 순교로서 증명했다.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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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9-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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