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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세례 축일 기획] 요르단강 다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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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2일 주님 세례 축일은 예수님께서 세례받으신 일을 기념한다. 주님은 갈릴래아에서 요르단강으로 요한 세례자를 찾아가 세례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 앞에 당신이 누구신지를 드러내시고, 사명을 시작하신다. 예수의 세례로 교회 역사에서 중요한 장소가 된 요르단강은 구약에서도 하느님 손길이 특별한 형식으로 닿아있음을 찾을 수 있다.



■ 세례자 요한의 활동과 예수의 세례

‘요르단’은 히브리어로 ‘야르덴’인데, ‘야라드’와 ‘단’이 합쳐진 말로 추측된다. 단에서 흐른다는 뜻을 지니는데, 즉 단 지방에서 흘러내린다는 의미라 할 수 있다.

요르단강 수원은 이스라엘 가장 북쪽인 헤르몬산이다. 최고 2800m로 5월까지 눈이 쌓이는데, 샘이 세 군데 있다. 그중 가장 큰 곳이 ‘단’ 샘이다. 단은 고대에 단 지파가 그곳에 정착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헤르몬은 고도가 높아 강수량이 풍부하기에 시편에서는 ‘헤르몬의 이슬’을 찬양하는 내용도 찾아볼 수 있다. 요르단강은 그런 배경처럼 헤르몬의 이슬이 모인 강이라 할 수 있다.

요르단강의 물은 갈릴래아 호수로 들어갔다가 사해로까지 이어진다. 총 길이는 360㎞가 넘지만, 이리저리 구부러져 흘러서 실제 거리는 200㎞ 정도다. 최대 강폭은 6~7m, 최소 1~2m다. 강이라고 하기는 규모가 작지만, 이스라엘에는 이보다 더 큰 강이 없다.

중간중간 깊은 곳이 있어서 예전에는 배를 타고 건넌 기록을 찾을 수 있다. 다윗 집안의 사람들이 요르단강을 건너려 했을 때(2사무 19,19) 배를 탄 것으로 헤아려 볼 수 있다. 현존하는 이스라엘 성지 지도 중 가장 오래된 서기 6세기의 마다바 모자이크 지도에도 요르단강에 배가 떠 있는 형태가 있다.

강은 상부 요르단강, 하부 요르단강으로 불리는데 상부 요르단강은 갈릴래아 호수 위쪽을 말한다. 헤르몬산의 눈이 녹아 훌레호 호수로 모여들었다가 상부 요르단강을 거쳐 갈릴래아 호수로 흘러간다고 한다. 예수가 활동하신 활동지 대부분이 갈릴래아 호수 주변 북반부에 있다.

하부 요르단강은 갈릴래아 호수 남단에서 사해로 이어진다. 서기 27년경 세례자 요한이 요르단강에서 세례를 베풀었는데, 정확한 위치는 언급되지 않는다. 하지만 학자들은 하부 요르단강이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예수 역시 이곳에서 세례를 받았을 것이다.


■ 몸이 깨끗해진 곳

구약에서 요르단강은 나병 환자로 시리아 왕의 군사령관이었던 나아만이 엘리사 조언대로 일곱 번 몸을 씻어 몸이 깨끗해진 곳이다. 이후 나아만은 야훼를 믿게 됐다. (2열왕 5장)

엘리야는 승천하기 전에 엘리사와 함께 요르단강으로 간 일화가 있다. 그때 엘리야는 겉옷을 벗어 말아서 강물을 쳤다. 이때 물이 좌우로 갈라졌고, 강을 건너게 됐다. 엘리야의 승천 후 엘리사도 엘리야가 두고 간 겉옷으로 요르단강물을 치자 같은 현상이 일어났다.(2열왕 2,6-14)

탈출기와도 연관이 있다.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와 함께 시나이반도를 지나 느보산에 도착했지만 모세는 그곳에서 죽었고, 여호수아의 인도로 이스라엘 백성은 요르단강을 건너 약속의 땅으로 들어간다.(여호 3장) 여호수아 4장 23절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이 사건을 회고하면서 홍해를 건넌 기적에 비유한다.

지금도 이스라엘과 요르단 왕국 사이의 국경선인 요르단강은 역사적으로 팔레스타인과 요르단 지역 사이 국경선 구실을 했다. 고대에도 가나안의 자연 경계였다. 광야를 유랑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이 강을 건넌 것은 이 사실을 대변한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이 건넌 지역은 예리코 맞은편 쪽으로 강폭이 가장 넓은 편이라고 한다.

김명숙(소피아·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박사는 “요르단강은 광야에서의 방랑을 마감하고 안식의 땅으로 들어가는 입문을 상징한다”며 “세례자 요한이 요르단강에서 세례를 주었다는 것은 나아만이 강에서 몸을 씻은 후 깨끗해졌듯이 세례받는 이도 묵은 죄를 씻으며 새롭게 거듭난다는 의미를 얻는다”고 밝혔다.

즉 요르단강에서의 세례는 탈출기 때와 같은 초심을 깨우치는 역할을 했으며, 방랑과 배회를 마감하고 생명의 나라, 하느님 나라에 동참하라는 외침이자 몸짓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요르단강은 단순히 자연적인 강의 의미를 넘어 묵은 것을 벗고 새 삶을 시작하는 세례의 의미를 부각하고 그 첫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뜻을 담고 있다.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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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0-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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