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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에세이] 그분의 영역 / 윤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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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일의 특성상 도와야 하는 사람들을 참 많이 만납니다. 물질적인 도움뿐 아니라 정신적인 도움도 필요로 하는 많은 사람이 있고 또 그들을 여러 가지 형태로 돕는 많은 사람을 보면서 느끼는 바가 참 많았습니다.

한번은 천주교 신자도 아니고 이쪽 일과 관련된 일을 하는 분도 아니었는데 길가다가 만난 생면부지의 사람을 돕기 위해 본인의 시간과 돈을 써가며 여기저기 물어 물어 찾아온 분이 계셨습니다. 그냥 모른 척 지나칠 수도 있었고 그 사람이 도움을 받고자 하는 곳의 주소만 알려줘도 충분했을 텐데 그분은 그러지 않고 그 사람을 직접 차에 태우고 여기저기 수소문하여 여기까지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그냥 데려다만 주고 갈 수도 있었지만, 그분은 그 사람 일이 제대로 처리될 때까지 함께 있어 주었고 다 해결이 된 걸 본 후에야 안심하며 일터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분을 보면서 저는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생각해봤습니다. 솔직히 전 그렇게까지 못할 것 같습니다. 나름 천주교 신자인데, 그리고 천주교 기관에서 일하는데 과연 제가 그렇게까지 적극적으로 누군지도 모르는 타인을 위해 제시간과 돈을 내어줄 수 있을까. 이 험한 세상에 그 사람을 어떻게 믿고서, 그리고 오히려 이용만 당할 수도 있고 도와주고도 좋은 소리 못 들을 수도 있는데 어떻게 도와주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등등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분과 저 자신을 비교해보니 전 참 부끄러운 신앙인이었습니다. 제가 다른 사람을 돕는 수준은 그저 매달 소수의 기관에 소액 기부금을 내는 게 전부였습니다.

이것에 대해 어느 신부님과 얘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때 그 신부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사람은 저마다 다른 능력과 방법으로 사랑을 베풀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 사랑이 옳고 그르다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므로 우리는 그저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사랑을 실천하면 되지 않겠냐고 하셨습니다.

내가 기도를 잘하면 기도가 필요한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사랑이고 내가 다른 이의 말을 잘 들어주면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것이 사랑이고 내가 잘 웃는 사람이면 내가 웃음으로서 다른 사람까지도 웃게 만들어 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가진 것 중에서 기꺼이 내어줄 수 있는 게 있다면 그것이 물질적이든 영적이든, 큰 것이든 작은 것이든, 대단한 일이든 사소한 일이든 어떠한 형태로든 그것으로 사랑을 전달할 수 있고 그것으로 다른 이를 어떠한 형태로든 도와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겠냐는 말씀이었습니다.

그 신부님의 말씀을 되새기며 저는 어떻게 사랑을 전하고 어떻게 다른 누군가를 도울 수 있을까 생각해봅니다. 일단 제가 잘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부터 찾아봐야겠죠? 사랑을 실천하는 방법은 정말 다양하니까요. 그리고 오로지 판단은 그분의 영역이라는 거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윤가영
(체칠리아·제2대리구 오전동본당)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20-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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