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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 성화의 날(6월 19일)에 만난 사람 / 원로사목자 최재용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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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신뢰하니 아침에 당신의 자애를 입게 하소서. 당신께 제 영혼을 들어 올리니 걸어야 할 길 제게 알려 주소서.”

50년 전인 1970년 7월 11일 수원 고등동성당에서 사제품을 받은 최재용 신부(원로사목자)는 시편 143장 8절의 이 말씀을 사제로 살아가며 인생의 방향을 잡아 줄 모토로 택했다. 사제 성화의 날을 맞으며 또 올해 사제서품 금경축을 맞이하는 입장에서 그때의 성구를 정하던 첫 마음은 새로울 수밖에 없다.

“내성적인 성격이어서 사제가 될 때 솔직히 자신감이 없었습니다. 동창 신부들이 열심히 준비하는 것을 보면서, 어쩌다 보니 밀려서 사제가 된 것 같습니다. ‘내가 사제로서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조심스러운 마음이었죠.” 웃음 섞인 소회 속에서 사제직을 향한 겸손함이 배어 나왔다.

“서품 성구 구절처럼 여전히 예수님과 성모님 곁에서 서성거리는 느낌”이라는 최 신부는 “이제 주님 앞에 오래 머무는 시간이 더 많은 나이가 되면서 홀로 미사를 봉헌하며 주님과 독대를 하다 보니 묵상이 깊어진다”고 들려줬다. “그저 주님께서 나를 잊지 않고 계신다는 것을 더 체험하게 됩니다.”

그는 서품과 동시에 반월성본당 주임으로 사제 생활을 시작했다. 2012년 사목 일선에서 물러날 때까지 해외를 포함, 다양한 본당을 거치며 신자들과 희로애락을 함께 했다. 또 사목국장 및 교육국장, 사무처장, 총대리, 대리구장 등 교구의 중책을 맡았다.

“신학교 건립이나 수도회 유치, 사제 및 수도성소의 감소에 대한 혜안을 지니셨던 주교님들과 선배 사제들을 모시며 여러 차례 이분들 위에 성령께서 함께하고 계심을 느꼈다”는 최 신부는 “너무 훌륭하고 열심한 주교님들과 선배 신부들, 동료 신부들 그리고 신실한 신자 분들이 수없이 함께 계셨기 때문에 복을 가장 많이 받았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가 사제직의 소중함을 절실히 체험했던 것은 1983년부터 1986년까지 미국 산호세본당 제1대 주임 신부로 사목을 펼쳤던 때다. 낯선 타국 땅에서 하느님께 의지하며 살아가는 신자들 모습에서 사제의 존재와 정체성의 의미를 실감했다.

“혼탁한 사회 안에서 교회는 정신적으로 방황하는 이들에게 머물 수 있는 곳, 잠자리 같은 곳, 안식처가 돼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50년 동안 사제로 살아오면서 정점은 2006년 식도와 대장에 암이 있다는 진단을 받은 것”이라고 밝힌 최 신부. 9시간이 넘는 대수술을 했던 그는 “당시에 인간적으로는 절망이 컸지만, 돌이켜보면 그 과정은 사제로서 하느님 앞에 가장 큰 은혜 중 은혜였고 ‘꽃길’이었다”고 말했다. 분당야탑동본당 새 성당을 봉헌하고 수원대리구장 소임을 담당해야 하는 시기에서 암 진단이라는 변수는 “사제는 모든 것을 끌어안는 삶”이라는 깨달음을 안겼다.

50년 사제의 삶 속에서 사제의 소명을 생각할 때 늘 뇌리에서 잊히지 않는 말이 있다면, 사제수품에 앞서 영성 지도사제였던 고(故) 최민순 신부가 했던 당부다. ‘신부의 삶은 서품 후 신자들에게 단 한 번 고해성사를 주고, 미사를 한 번 집전하고 죽는 일이 생긴다 해도 가치 있는 일’이라는 말이었다.

“똑똑한 신부보다 착하고 성품 좋은 신부로, 애환을 같이 나눴던 신부로 신자들에게 기억되기를 바란다”는 최 신부는 “후배 사제들이 ‘참 수더분하고 자상한 선배’로 생각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사제 독신제에 대한 의견도 드러냈다. “독신 생활은 개인적으로는 힘들지만, 교회공동체로선 훌륭한 제도”라며 “현대에서는 어쩌다 보니 독신을 억지로 지키는 것 같은 분위기인데, 이를 극복하고 정덕으로 승화되기 위해서는 교회 공동체가 혼연일체가 되어 기도하고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간 본지와의 인터뷰 등을 통해 ‘사제는 수행하는 사람’을 강조해 왔던 최 신부는 “신부의 삶은 살얼음 위를 걷듯 매사에 겸손하게 사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제 성화의 날을 맞아 후배 사제들에게는 “「복음의 기쁨」과 「사랑의 기쁨」 등 교황 문헌을 성경 다음으로 외울 수 있을 만큼 가까이하고 통달하게 되기를 바란다”고 부탁했다.

“교회도 따듯한 분위기를 창출했으면 합니다. 지금은 교회의 속내가 그대로 나타나는 세상입니다. 권위가 아니라 훈훈함과 따듯함으로 다가가야 한다고 봅니다.”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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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0-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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