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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알 하나] 중독과의 만남 9 / 이중교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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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쾅!’ 신호 대기 중 순간 뒤에서 불이 번쩍이더니 정신이 번쩍였다. 부슬부슬 비가 내리던 새벽길. 주일 새벽미사를 부탁받고 열심히 차를 몰고 가던 평범한 그 날의 새벽은 그렇게 평범하지 않았다.

“아…, 미사 드리러 가야 하는데…. 손님 신부가 미사를 펑크 내다니! 더욱이 주일미사를!” 그때 떠올랐던 생각은 레커차 기사에게 부탁하는 것이었다. 당신들이 원하는 공업사에 갈 테니 그리고 요금을 더 지불할 테니 우선 성당을 가자고 부탁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었다. 그렇게 레커 차 기사에게 설명하며 발을 동동 구르던 중 어떤 구경하던 남자분이 내게 말을 걸었다.

“혹시 신부님이세요? 괜찮으시면 제가 모셔드리겠습니다.”

그분은 끝까지 자신이 어느 본당 신자라는 사실만 말씀하신 채 성함과 세례명은 밝히지 않으셨다. 축축하게 젖은 머리와 양복. 그래도 미사 30분 전이라 고해성사도 늦지 않았다. 그제야 정신이 들어 머리를 손으로 털어내며 그 짧은 시간을 되돌아보았다. 무엇보다 하느님께 감사를 드렸고, ‘나 자신이 사제가 맞긴 맞구나’라는 생각에 피식 웃음도 났다. 사죄경을 외우며 강복을 드리는 데에도 어깨가 저려 힘이 들었지만, 그 순간 미사를 제일 걱정했으니. 팔과 다리가 떨린 채 미사를 드리며 공지사항 때 신자분들에게 짧게 여쭤보았다.

“오늘 제가 이 미사를 오던 도중에 교통사고가 났습니다. 그 순간 제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올랐을까요?” 신자분들은 어떤 주저함과 망설임 없이 이구동성으로 대답해주셨다. “미사시간이요.”

그렇다. 사제이든 신자이든 사제가 미사시간에 늦으면 안 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은 어떠한 사제이든 어떠한 신자이든 누구나가 당연히 생각하는 것이다. 그 당연한 생각을 한다고 해서 대견한 것도 아니며, 그 당연한 생각을 실천에 옮긴다고 하여도 대단한 일이 아니다. 그 일은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따름이다.

알코올중독자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그것은 오늘 하루도 단주하는 일이다. 알코올중독자가 단주했다고 해서 대견한 일도 아니며, 누구에게 칭찬받을 일도 아니다. 그러나 하루하루의 단주에 성공했을 때, 평온함을 청하는 기도(AA 모임을 마치며 바치는 기도)에서처럼 자신이 믿는 신에게 감사를 드린다. 하루를 넘어 이틀을 단주했을 때, 자신도 할 수 있는 용기를 얻는다. 그리고 이틀을 넘어 또 하루를 건널 때, 왜 단주를 해야 하는지 느낀다. 그것은 그저 자신이 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해야 하는 것이다. 그 일을 하지 못했을 때 자신의 존재 의미는 그 자체로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중교 신부 (수원교구 이주사목위원회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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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0-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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