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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특집] 한국전쟁으로 희생된 교구 하느님의 종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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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 25일 발발한 한국전쟁은 교회에도 엄청난 피해를 남겼다. 전쟁을 전후해 체포·피살·행방불명 등으로 희생된 한국인 성직자는 40명을 헤아린다. 당시 한국인 성직자가 144명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약 30%에 이르는 비율이다. 그런 희생을 치렀음에도 한반도는 분단되고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아있다. 한국전쟁 때 희생된 근·현대 신앙의 증인 ‘하느님의 종 홍용호 프란치스코 보르지아 주교와 동료 80위’에는 데지레 폴리 신부, 조제프 몰리마르 신부, 앙투안 공베르 신부, 유재옥 신부 등 교구와 관련된 4명의 하느님의 종이 포함돼 있다. 6월 25일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을 맞아 교구 하느님의 종들의 면면을 살펴본다.

■ 데지레 폴리(Desire Polly, 1884~1950) 신부

파리 외방 전교회 소속으로 1907년 8월 8일 한국에 왔던 폴리 신부는 인천 답동본당, 충남 서산본당 주임 등을 거쳐 1931년 5월 수원 북수동본당 주임을 맡았다. 그리고 천안(현 오룡동)본당 주임으로 재직 중 1950년 8월 23일 공산군에 체포됐다.

전쟁 중에도 사제 직무에 충실했던 그는 사람들이 피난을 권하자 “자기 나라를 두고 피난을 가? 그건 역적이야. 근데 더군다나 신부가 신자를 놔두고 도망가? 그건 신부도 아니야”라며 거부했다. 천안 함락이 임박해지자 미군들도 지프차를 타고 와서 떠날 것을 종용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신자들 곁을 지켰다.

체포될 때까지 사제관에서 미사를 봉헌한 폴리 신부는 공산군이 성당에 들어왔을 때 그들에게 “하느님을 믿으라”고 당당하게 선교했다고 한다. 잡혀가면서는 신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그들과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대전 프란치스코 수도원에 갇혔던 그는 1950년 9월 23~26일 사이 공산군들에 의해 피살됐다. 그때 옥에 같이 있었던 이의 증언에 따르면, 피살이 임박해 오자 폴리 신부는 “순교를 준비할 때다”라고 동료들에게 말했다고 한다.

시신이 발견되지 않아 실종자로 분류됐었던 폴리 신부는 이후 공식적인 추모 행사는 없었으나 천안본당과 수원본당 신자들로부터 존경을 받아왔다. 천안본당 신자들은 1980년 그를 추모하기 위해 체포된 곳(현 한국순교복자수녀회 대전관구 정원)에 ‘심 데시데라도 신부 순교비’를 세웠다.

교구 신자들은 1995년 9월 17일 수원 북수동성당 내에 심 신부 유품 전시장을 만들었으며 2007년 11월 21일에는 전시장을 ‘심뽈리 화랑’으로 개칭했다. 또 ‘심 데시데라도 신부 기념비’를 함께 건립했다.


■ 조제프 몰리마르(Joseph J. Molimard,1897~1950) 신부

몰리마르 신부는 파리 외방 전교회 소속으로 1925년 한국에 도착했다. 1928년 4월 14일 신설된 비전리본당(현 평택본당) 초대 주임신부로 부임한 그는 제3대 주임 신부까지 합하면 10여 년 평택본당에서 주임 신부로 봉직했고 계속해서 평택 서정리본당 초대 신부 발령을 받아 약 10년간 재임했다.

이 기간에 몰리마르 신부는 지역 복음화에 선구자적 역할을 했다. 평택본당 재임시에는 본당 월보를 발행해 각 공소에 분배해서 교리교육을 했고, 고향의 포도밭을 팔아 서정리에 임시 사제관과 경당을 세우는 등 평택 지역 본당 증설에 힘을 쏟았다.

1948년 대전교구 금사리본당으로 이동해 사목하던 중 한국전쟁을 맞은 그는 잠시 피신했으나 신자들이 괴롭힘을 당할 것을 염려해 다시 성당으로 돌아왔다가 체포됐다. 잡히기 전에는 유서를 작성해 프랑스에 있는 유산으로 금사리 인근 도시에 새 성당 건립을 당부했다.

1950년 8월 공산군들에게 1개월간 잡혀있는 동안 신앙을 버릴 것을 강요받았지만 굴복하지 않았고, 대전 프란치스코 수도원에 감금됐다가 1950년 9월 23~26일 피살됐다.

시신은 신자들에 의해 발견돼 근처에 임시로 매장됐다가 2년 후 대전 목동 프란치스코 수도원 묘지로 이장됐고, 1960년 대전 삼괴동 대전교구 천주교 공원묘원으로 이장됐다.

교구는 재임 동안 평택본당과 서정리본당에서 많은 공로를 세운 그의 묘소 이전을 추진해 2003년 4월 묘지 이장 때 유해를 평택성당 구내로 옮겨 안장했다. 아울러 추모비를 세운 기념 정원도 조성했다.

그의 유언에 따라 1955년에는 대전교구 규암본당이 설립됐으며 성당 구내에는 그의 세례명을 딴 ‘성 요셉의원’이 세워졌다.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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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0-06-16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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