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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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돌에 만난 사람] 독자들의 지속적 관심과 참여로 성장해온 2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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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박한 사회에 더 큰 우산돼야"

창간독자/ 인천실천시민연대 오창익 사무국장

   "요즘처럼 각박한 사회에서 인간 중심의 복음적 가치를 얘기하는 언론매체가 있다는 건 폭우 속 우산과 같은 거죠. 25살 된 평화신문은 그 우산을 지금보다 더 크게 만들어야 합니다."

 창간호부터 지금까지 25년 동안 평화신문을 구독해 온 `창간 독자` 오창익(루카, 47, 서울 이태원본당)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이 평화신문 창간 25돌을 축하하며 이 같은 바람을 전했다.

 유아세례를 받은 오씨는 천주교 인권위원회 등 인권단체에서만 일해온 인권운동가다. 인권운동이 신앙의 표현이자 봉사라고 생각하는 그는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을 거쳐 천주교 인권위원회에서 활동했고 현재는 인권실천시민연대에서 인권 교육과 인권 현안 대응에 몰두하고 있다.

 "평화신문 보도를 교회 안으로만 국한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교회 밖에서도 복음 정신으로 열심히 사는 사람이 많은데, 이런 분들도 평화 식구로 생각해서 소개했으면 합니다. 신문이 많은 사람과 소통해야 합니다. 더 많은 사람에게 따뜻한 위로를 전해야 할 사명이 있는 거죠."

 1988년 평화신문 창간 당시, 아버지가 평화신문을 정기구독하면서 자연스럽게 평화신문 독자가 된 오씨는 "정기구독은 신자로서의 기본이라고 생각한다"며 "25년 동안 습관처럼 평화신문을 꼼꼼히 들여다봤다"고 말했다.

 오씨는 애독자로서 쓴소리도 마다치 않았다. "평화신문이 교회 정론지로서의 기준을 확고히 해야 합니다. 사회적 쟁점을 교회적 시각으로 해석하고 풀어내 한국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이 다소 약한 것 같습니다."

 오씨는 "매번 비슷비슷한 본당 소식을 싣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독자들에게 더 큰 우산 역할을 해줄까`를 고민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오씨는 외국인노동자 무료 진료소 라파엘 클리닉을 처음 만들 때 함께했으며, 주일학교 교사를 비롯해 최근까지 본당 전례부에서 활동하는 등 신앙생활도 누구보다 적극적이다.

 그는 "`신앙인은 일반인과 다르다`라는 얘기를 들을 수 있도록 평화신문이 좀 더 능동적으로 촉진자 역할에 나서야 한다"며 "교도소와 군부대, 감옥은 아니나 사실상 감옥 같은 상황에서 아픔을 겪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품을 내주고 위로하는 친근한 벗이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평화신문의 가장 중요한 구성원은 다름 아닌 신자와 독자들"이라며 "신자들이 구독을 많이 할수록 신문에 대한 참여도가 높아지고, 그렇게 해야 평화신문이 독자들에게 친근한 벗과 큰 우산의 역할을 다 해낼 것"이라고 덧붙였다.
강성화 기자 michaela25@pbc.co.kr

 
명예기자 적극 활용해 전국 소식 풍성했으면

20년 동안 명예기자로 활동한/  수원교구 최효근씨

  `광명지역 복음화 체육대회`

 최효근(베네딕토, 55, 수원교구 하안본당) 명예기자는 1994년 6월 평화신문 제285호에 사진과 함께 실린 짤막한 기사를 잊지 못한다. 1993년 8월 평화신문 명예기자 시험에 합격한 후 10개월 만에 실린 최씨의 생애 첫 기사였다.

 20년 전 평화신문 2기 명예기자 시험에 합격한 이는 54명이지만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는 사람은 최씨와 제주교구 김승호(암브로시오) 명예기자뿐이다.

 그동안 평화신문에 실린 그의 기사는 268건. 송고했지만 지면에 나가지 못한 기사는 2000건에 이른다. 대전에 있는 신협연수원에서 교수로 재직 중인 최씨는 주말마다 집이 있는 광명에 올라와 취재거리를 찾고 부지런히 현장을 누빈다. 20년 동안 활동을 쉰 적이 없다. 그는 "평화신문 명예기자 활동을 늘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평화신문에서 명예기자 모집 공고를 보고 바로 지원을 했어요. 그때는 명예기자가 되려면 본당 신부님 추천서가 있어야 했고 서류 전형, 면접도 있었죠. 합격 소식을 듣고 정말 기뻤어요. 하느님에 제게 주신 소명이라고 생각했죠.
`초심을 잃지 말자`는 다짐을 하고 주말마다 정말 열정을 다해 이곳저곳을 뛰어다녔어요."

 지금은 기술이 발달해 마우스 클릭 몇 번으로 쉽게 기사와 사진을 전송할 수 있지만 1990년대 중반만 해도 기사 송고는 보통일이 아니었다. 기사는 손으로 써서 팩스로 전송하거나 시간이 촉박할 때는 본지 기자들에게 전화를 해 기사 내용을 불러줘야 했다. 사진은 등기우편으로 부치거나 시외버스 기사에게 부탁해 서울로 보냈다.

 최씨는 "주말에 취재하고 월요일 아침에 사진을 보내느라 회사에 늦은 적도 몇 번 있었다"면서 "아내에게 `신문에 다 나오지도 않는데 뭘 그렇게 지극정성으로 보내느냐`는 핀잔을 들은 적도 있었지만 내가 꼭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송고한 기사가 지면에 실릴 때 큰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지인들에게 "기사 잘 봤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보람은 더 커졌다. 본지 1011호 1면에 실린 `12년 만에 지킨 하느님과 약속`은 사람들에게 "감동적이었다"는 말을 가장 많이 들었던 기사다. 12년 전 하안성당을 건립할 때 신축기금을 책정했지만 너무 가난해 봉헌하지 못했던 신자가 하느님과 약속을 지키기 위해 늦게나마 100만 원을 봉헌했다는 내용이었다.

 최씨는 "평화신문이 명예기자를 좀더 적극적으로 활용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는 "평화신문에 지방 교구 소식이 상대적으로 적은 것 같아 아쉽다"면서 "명예기자를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육성한다면 전국 곳곳의 소식을 풍성하게 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도 평화신문 명예기자로 20년이고 30년이고 계속해서 활동하고 싶다"면서 "독자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기사를 쓰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포



가톨릭평화신문  2013-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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