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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추기경 7苦 묵상] (6) 제6고(苦) 교구장이라는 십자가

30년간 사랑·나눔 실천하며 헌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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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한국교회 창립 200주년 기념 신앙대회와 함께 순교 복자 103위의 시성식이 열렸다. 여기에는 김수환 추기경의 역할이 컸다. 순교자들이 성인이 되기 위해선 더 많은 사료와 자료가 필요했다. 하지만 초기교회 혼란기를 거쳐오면서 한국교회는 그분들을 기억할만한 사료가 부족했다. 김 추기경은 이때 신앙 선조들의 순교 신심으로 담금질한 한국교회 신앙 역사를 증거한다. 시성절차 중 기적심사 관면을 위한 청원서를 제출한 것이다.

“하나뿐인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신앙을 증거한 선조들 사이에서 왜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겠습니까. 다만 구체적으로 증명하지 못할 따름입니다. 그러나 순교자들로 인한 기적은 지금도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100년에 걸친 박해 잿더미에서 교회가 다시 일어서고, 복음이 퍼져 나가 한 해 성인 영세자가 10만 명에 달하는 것이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순교 영성이 우리 교회의 뿌리이고 그 영성이 현재까지 교회를 이끌어 나가고 있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영적 기적을 인정하고 기적 심사를 면제했다.

이듬해, 서울이 제44차 세계성체대회(1989년) 개최지로 결정됐다. 성체대회 주제는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였다. 그리스도의 평화가 무엇이며, 그 평화를 이루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물음이 따라왔다.

김 추기경은 이때 평화는 내가 남에게 ‘밥’이 돼 줄 때 이뤄진다고 이야기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시라 내어주신 것도 모자라, 십자가의 죽음을 자청하며 우리에게 밥이 돼 주셨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또한 우리가 그분처럼 서로 밥이 돼주는 삶, 먹는 것이 아니라 먹히는 삶, 남들에게 내어주기 위해 부서지고 쪼개지고 나눠지는 빵(성체)과 같은 삶을 살자고 당부했다.

이러한 성체대회 정신을 구체화시킨 것이 ‘한마음한몸운동본부’다. 한마음한몸 운동은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을 모아 소외된 이웃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김 추기경은 그 정신의 모범을 위해 직접 안구각막기증서에 서명했다.

이런 그에게 긴 시간 동안 마음 한 구석에서 떨쳐 버릴 수 없었던 곳이 있었다. 바로 북한교회다. 김 추기경은 서울대교구장이자 평양교구장 서리였다. 그래서인지 늘 북한교회와 동포를 마음에 담고 살았다. 북한에 국수공장을 세우고 배편을 이용해 식량을 나르는 등 북한교회에 대한 강한 애정을 드러냈다. ‘퍼주기 지원’이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그 애정이 일방적이라고 느껴질 때도 있었다. 상대는 늘 일정 거리를 두고 마음을 열려고 하지 않았다. 분단의 벽은 아직 넘을 수 없을 만큼 높은 듯 보였다. 그러나 김 추기경의 한결같은 애정은 식을 줄을 몰랐다.

김 추기경은 참으로 통일을 원한다면 소극적 마음자세부터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평화통일은 우리가 남을 위하고 사랑할 때, 남에게 먼저 다가설 때 비로소 가능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정말 북녘 동포를 형제로 생각하고 가진 것을 떼어서 나눠줄 마음이 있는가’, ‘그들을 받아들일 마음의 문을 열어놓고 있는가’부터 되새겨 보라는 이야기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부터 변해야 한다고 했다. “우리끼리 먼저 화해하고 일치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1998년, 그는 76세 나이로 서울대교구 교구장직에서 물러난다. 감사미사를 봉헌하며 그의 머릿속에는 오직 ‘감사하다’는 한마디만 맴돌았다. 자신을 불러 써주신 하느님께 감사했고, 순간순간 도움과 위로의 손길을 내밀어준 성모님께 감사했고, 기도와 봉사를 아끼지 않은 교구민에게 감사했다. 그리고 강산이 세 번 변한다는 30년 세월동안 자신을 믿고 따라준 사제와 신자들을 위해 기도했다.

그리고, 부족함을 고백했다. 헌신과 사랑의 삶을 살았지만 그럼에도 그는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길 만큼 굳건하지 않았고, 하느님께서 맡기신 양 떼를 죽도록 사랑하지 못했고, 하느님께 은총을 구하는 기도도 부족했다고 했다.

김 추기경은 그렇게 30년 동안 짊어지고 있던 짐을 내려놓았다.


 
▲ 가난한 이들 속에 현존하는 하느님을 만나기 위한 현장 생활 체험의 일환으로 1985년 8월 사북 탄광을 찾은 김 추기경의 모습.
 

 
▲ 1997년 ‘북한 동포 돕기 100만인 서명 운동’ 기자 회견에서의 김 추기경.
 

 
▲ 서울대교구장직에서 물러나며 봉헌한 감사미사에서의 김 추기경.
30년 동안 짊어졌던 교구장직을 내려놓으며 그는 신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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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0-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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